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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포퓰리즘과 기계적 평등을 가르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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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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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우수자 숨어서 상 받고 '1인 1상'
능력주의 폄하·대중 영합 당연시 우려
아이는 미성숙 존재, 엄격한 훈련 필요
이 사실 받아들이는 게 참교육 출발점
배병우 논설위원
배병우 논설위원
우리 초중등 교육이 문제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 전 접한 뉴스는 충격이었다. 학교에서 소풍과 수학여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초등학교의 숙박형 현장체험학습은 6.45%로 거의 자취를 감췄고, 소풍(1일형 체험학습) 가는 학교조차 2023년 98.8%에서 올해는 20%대로 급감했다. 안전사고가 날 경우 책임 문제 등을 우려해 교사들이 이런 현장체험 학습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소풍 가는 길가의 신기하고 낯설던 풍경들. 학교에서 벗어나 지금은 얼굴도 아스라한 친구·선생님들과 함께했던 흥분되고 신났던 시간들. 소풍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성장기의 이런 추억마저 요즘 청소년에겐 먼 나라의 일이라니 씁쓸하다. 이 뉴스는 온라인과 인공지능(AI) 등 매개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직접 경험'이 죽어가고 있다는 경고를 뒷받침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에서는 상업적 이윤을 노린 빅테크 기업의 '직접 경험 죽이기'에 맞서야 할 학교와 교육당국이 이런 흐름에 오히려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교육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상을 벗어났는지 실감나게 보여주는 증거로 이 뉴스는 필자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구더기 생길까 싶어 장독 없애버리는 격 아니냐"며 교사들의 소극적인 자세를 탓했다. 체험학습 시 가중되는 행정 업무와 민원에 교사들이 '(골치 아픈 일) 아예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근본 원인은 결코 아니다. 교사의 권한과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자기 자식 챙기기에만 눈이 먼 학부모들의 행태를 우선 탓해야 한다. 학교 같은 공공의 자리에서 자기 자식만 챙기는 행동을 우리 부모님 세대는 선을 넘는 짓으로 여겼다. 천박한 행동이라며 경계했다. 대통령이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학부모들의 도 넘은 행위에 대해서 따끔한 한마디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교육 현장의 비정상이 우리 정치의 병증과 흡사하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학교 졸업식에서 학업우수상 등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개 시상이 사라지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거나 다른 과외활동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학생들이 '숨어서' 상을 받는 판이다. 초등학교에선 '1인 1상'이 이미 자리 잡았다. 학생들이 직접 상의 이름을 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모두가 하나씩 상을 받는 것이다. 해외 토픽감인,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의 배경에도 자기 자식의 '심기 불편' 만을 염려하는 부모들의 극성과 과욕이 있다. 해외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본 바 없는 '비정상'이 한국에서는 '정상'이 돼 가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계적 평등주의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싹이 자라고 있다.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예술 감각이 뛰어나는 등 개인의 적성과 소질은 다양하다. 성적 우수자가 숨어서 상 받는 현실에는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폄하가 담겨 있다. 학교가 다양성은 물론 탁월함에 대한 멸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 살려면 모두가 범용(凡庸)해야 하며 '돌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모두에게 상을 나눠주는 건 어떤가. 상식에 어긋나도 다수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최선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개인에게 책임 있고 용기 있는 성숙한 시민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공익을 해치든 말든 개인의 기호와 이익에 영합하는 세력을 당연하게 여길 공산이 크다. 학교가 참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대신 포퓰리즘을 전수하고 있다.

나치와 공산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후 독일 교육에는 훈련과 훈육이 사라졌다. '학생 인권'이 최우선인 우리 교육이 군사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독일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게 2006년 출간된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Lob Der Disziplin)'이다. "아이를 사랑해서 원하는 대로 뭐든 다 해주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원칙과 관용, 훈련과 사랑 사이에서 중용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 베른하르트 부엡은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미성숙한 존재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다. 학부모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참교육은 시작될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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