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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비핵화공동선언’ 남북대화사료 공개...서로 책상 치며 ‘으르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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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용재 기자

승인 : 2026. 06. 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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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3년까지 32차례 걸친 남북 핵협상 사료 공개
핵 사찰 방식 두고 평행선 달리는 南北입장 고스란히 보여줘
통일부, 90년대초 남북회담 문서 공개<YONHAP NO-5713>
통일부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총 32회에 걸쳐 진행된 핵협상을 기록한 3천836쪽 분량의 남북회담 문서를 30일 새로 공개했다. 이번 남북회담 문서 공개는 2022년 5월 첫 공개 이래 여덟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1991.12) 과정과 그 후 남북 대표 간 접촉 및 회담이 대상이다. 사진은 지난 1992년 4월 21일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3차회의 회의장면./연합뉴스
남북이 1990년대 초 북핵 협상 자리에서 거친 설전을 벌였던 현장의 대화록이 담긴 남북대화사료가 30일 공개됐다. 당시 양측은 테이블을 치며 "깡패", "강도의 논리"를 운운하는 등 첨예하게 대립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통일부가 이번에 공개한 남북대화사료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남북이 총 32차례에 걸쳐 진행한 핵 협상 현장 대화가 생생하게 담겼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채택 및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도출, 한반도 비핵화 검증을 위한 사찰 규정 등 세부 이행 토의 내용 등을 담고 있는 이번 사료는 남북 간 핵 사찰 방식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양측의 입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기간동안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함에 따라 한국은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의 일시 중단 발표를, 북한은 국제핵사찰 수용 성명 발표를 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사찰 범위와 규정 및 실무협상 과정에서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협상은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이 과정에서 남북 회담 대표들은 각자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에 대한 인식 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등 거친 언사를 주고 받았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이후 이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핵통제공동위 구성·운영을 위한 첫 번째 회담부터 양측은 삐걱거렸다. 당시 한국은 상호 지정한 시설과 장소에 대한 시범 사찰을 조속히 진행할 것을 북한에 긴급 제안했지만 북측은 한국 내 미국의 핵무기 및 핵기지 전반을 봐야 한다며 전면 사찰 실시를 주장했다. 이 같은 입장이 부딪히면서 양측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임동원 당시 남측 대표는 "새 시대가 온 것 같은 느낌이 안 든다"고 하자 최우진 북측 대표는 "피차 마찬가지"라고 맞받았다. 당시 북측 공동대표였던 김영철 인민무력부 부국장은 옆에서 "낡은 사람들과 마주 앉으니 우리도 그렇게 느낀다"고 거들었다.

남북핵통제공동위 구성·운영을 위한 6차 대표접촉에서는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자 양측이 격하게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임 대표가 책상을 치며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는 놈이"라고 거친말을 내뱉은 것이다. 임 대표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 필요성을 제기하자 최 대표가 "조그만한 원자로 하나 있다"며 영변 핵시설의 의미를 축소하고 관련 논의를 회피한 데 대한 발언이었다. 이에 최 대표도 책상을 치며 "어디 야, 어디 책상을 쳐"라고 맞받았다.

최우진 대표가 북한의 '최고존엄'인 김일성 국가주석의 사진을 스스로 찢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1992년 12월 17일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최 대표는 공로명 남측 대표가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는 사진을 건네자 이를 보지도 않고 찢었다.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미국 등 외세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난하며 협의를 공전시키자 공 대표가 이에 반박하기 위해 사진을 건넨 것이다. 당시 공 대표는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나"라고 하자 북측 대표단은 그제야 당황하며 "완전한 도발", "도발하려고 계획했느냐"며 반발했다. 북측이 당시 탈모 증상이 있었던 공 대표를 향해 "머리카락없는데 괜히 모자 안쓰고 나갔다가 햇빛에 쪼이게 되면 건강에 나쁘다"며 외모 비하성 발언을 한 내용도 대화록에 담겼다.

정승훈 남북회담 문서 공개 예비심사위원장은 "당시 한국의 입장에서 강압적 레버리지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유인책을 사용하면 북핵 문제를 초기 단계에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며 "당시 한국은 상호 24시간 전 사찰 대상을 선정하면 상대가 호응하는 방식의 사찰을 요구했는데 북한으로서는 이를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도 이런 방식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목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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