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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인도네시아 뒤흔드는 우유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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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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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논설심의실장
"우유 등 무상급식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환율이 급등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앞다퉈 빠져나가고 있어요. 사는 게 불안해요."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한 한국 교민은 인도네시아에서 외환위기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교롭게도 1997년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돼 인근 태국 등 동남아 국가로 번졌다. 우리나라도 비켜 가지 못해 외환보유고 고갈로 국제통화기금(IMF) 긴급구제금융을 받아 외환위기를 겨우 이겨냈다. 이젠 기억 속에 묻힌 외환위기란 단어를 거의 30년 만에 인도네시아 교민에게 듣게 되니 세월이 참 무상하다.

요즘 인도네시아 경제는 악화일로의 형국이다. 올해 들어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31% 급락했다. 수익률로는 세계 주식시장 가운데 꼴찌다. 한때 '신흥시장의 총아'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인도네시아지만, 요즘 외국 투자자들이 잇달아 발을 빼고 있다. 환율 역시 급락해 거의 외환위기 수준 밑으로 내려갔다. 인도네시아 루피아 환율은 지난달 한때 달러당 1만8000루피아를 넘겼다. 1만8000루피아는 외환위기 때도 넘긴 적 없는 역대 최고치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기습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모습이다.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하자 인도네시아 대학생 등은 연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을 정도다. 그들은 "나라가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위기의 진앙지는 바로 무상급식이다. 투자자들의 인도네시아 탈출은 현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에 기인한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야심찬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역효과를 내면서 재정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무상급식 프로그램은 그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다.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양질의 우유 등 먹거리를 무료로 제공해 국민 체질 개선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인도네시아 국가적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영양실조 해소다. 8300만명의 어린이와 임산부가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다지는 게 프로젝트의 근간이다. 동시에 지역 소상공인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프로젝트 계획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총체적 관리 부실과 부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데다 대규모 집단 식중독 사건이 이어지고 있어 점차 정책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급식을 빵이나 우유, 계란 등 식중독 위험에 덜 노출될 만한 품목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히고 나섰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적도권 아열대 국가에 속한다. 완벽한 냉장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음식물은 금세 부패하기 마련이다. 수많은 섬으로 구성돼 있어 물자 수송이 원활하지 않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정책, 특히 집단 급식이 멀리 섬 지역에 도달하려면 부지하세월이다.

정책 시행 과정에서의 부패와 비리도 만연해 있다. 지역 영세 급식업체들을 배제한 비현실적인 사업자 선정 기준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위생을 명분으로 스테인리스 주방 설비·에폭시 바닥·하루 최소 3500인분 이상 조리 가능 등의 조건을 내걸었지만 이 조건에 충족하는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영세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대기업만 배를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니 경찰과 군대가 직접 나서서 전국에 수백 개의 급식 조리 시설을 운영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우유 급식 확대를 위해 수백만t의 우유를 수입하고, 낙농산업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저가 호텔에서 매일 아침 내놓는 우유를 먹어보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인도네시아 무상급식 투입 예산은 연간 100억 달러에 달한다. 인도네시아로서는 막대한 재정이다. 이런 막대한 예산이 힘 있고 배경이 있는 부류들에게는 눈먼 돈이 되고 있고 영세업자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나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무상급식 정책으로 인도네시아 재정이 악화할 것으로 우려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와 무디스는 올 초 인도네시아 국가 신용등급은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에서 '부정'으로 각각 낮췄다.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수하르토의 사위 수비안토는 군 출신으로 정당을 창당하고 당대표를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19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조코위에게 패했다. 정치적 타협으로 조코위 행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돼 5년간 일했다. 다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무상급식을 내걸었고, 대통령직에 마침내 오른 것이다.

인도네시아 교민은 "수비안토가 자신의 인기에만 몰입한 나머지 전형적인 포퓰리즘을 동원한 결과 나라가 망해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포퓰리즘은 정치인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당장의 만족감을 주기 위해 선호하는 정책이지만, 성공 여부는 늘 불투명하다. 수비안토발 무상급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가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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