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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바로 그런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다. 상인의 아들 빌헬름은 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연극을 향한 꿈을 좇아 길을 떠난다. 그는 무대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가장 깊이 드러내는 공간이라 믿는다. 괴테는 이 작품에서 "인간은 자신을 오직 행동 속에서만 알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에게 보내는 조언인 동시에, 인생 전체를 향한 통찰이다.
빌헬름이 마주한 현실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유랑극단과 함께 떠돌며 만난 세계는 그가 꿈꾸던 이상과 달랐다. 무대 뒤에는 갈등과 질투가 있었고, 예술과 생계는 충돌했다.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지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으며, 그는 자신의 열정이 소명인지 젊은 날의 환상인지 의심한다. 그럼에도 괴테는 그의 실패를 헛된 시간으로 그리지 않는다. 훗날 '파우스트'에서도 밝혔듯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며, 시련이야말로 한 사람을 빚어내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그 여정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다. 신비로운 소녀 미뇽, 하프를 연주하는 노인, 배우와 귀족들이 빌헬름 앞에 나타난다. 그들은 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미뇽의 슬픔은 타인의 고통을 돌보는 법을 가르치고, 하프 노인의 비애는 인간의 삶이 이성과 계획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무대에 올리며 인간의 복잡한 영혼과 운명의 아이러니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괴테는 인간이 관계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발견하며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빌헬름은 마침내 연극이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젊은 날의 꿈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연극은 그에게 인간을 관찰하는 눈과 다른 삶을 상상하는 능력을 주었다. 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넓은 형태로 변했을 뿐이다. 한때의 열망은 좌절되지만, 그 열망을 통과한 사람은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늘날의 청년들도 비슷한 길 위에 서 있다. 졸업장은 손에 쥐었지만, 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인공지능은 수많은 직업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많은 청년이 거듭되는 탈락 속에서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듯한 좌절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방황은 실패가 되고, 공백은 낙오처럼 여겨진다. 사회는 직선으로 달리는 사람만을 성공이라고 부르지만, 인간의 성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설의 제목인 '수업시대'는 학교에서 배우는 시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삶이 직접 가르치는 시간을 의미한다. 괴테는 청년에게 직업보다 먼저 사람을 배우라고 말한다. 교육은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해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소설 후반부의 '탑의 결사'는 이러한 의미를 더욱 분명히 보여 준다. 빌헬름은 우연과 혼란으로 보였던 자신의 과거가 자신을 성숙하게 만든 배움의 연속이었음을 깨닫는다. 인생의 의미는 한참 뒤에 돌아보아야 비로소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사유는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AI는 즉각 정답을 내놓고 시행착오를 지워 최단 거리를 그린다. 그러나 인간은 알고리즘으로 자라지 않는다. 실패는 삭제할 오류가 아닌 인격을 빚는 시간이며, 우회는 성숙의 절대 조건이다. 어떤 지혜는 돌아가는 길에서만 싹트고, 어떤 성찰은 좌절을 통과해야 오롯이 새겨진다. 효율이 지배할수록 스스로 헤매며 삶의 결을 다지는 인간적 성숙은 더 절실해진다.
그렇기에 괴테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빌헬름에게 처음부터 정답을 알려 주지 않고 충분히 헤매고 실패하게 한다. 인간은 성장한 만큼 비로소 자신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취업이 늦어진 시간이 곧 삶의 지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공백은 상처가 아니라 깊이가 될 수 있다.
빌헬름의 수업은 직업을 찾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아들 펠릭스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한 생명을 책임지는 아버지가 된다. 또한 나탈리와 사랑을 이루며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사랑과 결혼은 낭만적인 보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인정하면서 함께 책임지는 수업시대의 결실이다. 빌헬름은 이제 무대 위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고 돌보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수업시대를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일찍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그 여정 속에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이다. 꿈을 좇아 떠나는 것도 용기이지만, 꿈의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책임지면서 조금씩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긴 수업이다. 새벽 기차가 이름 모를 역을 지나 먼 곳으로 나아가듯, 지금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청년도 어쩌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수업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