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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의사의 경험과 판단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현대의학은 여기에 새로운'눈'을 더했다. X-ray·CT·MRI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몸속을 보여주고 정밀한 의료장비는 진단과 치료의 정확성을 높인다. 의사의 경험과 첨단기술이 결합하면서 과거에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질병을 찾아내고 보다 정교한 치료도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첨단 의료장비가 의사를 대신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사가 더 정확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새로운 눈과 도구를 갖게 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소방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재난현장은 언제나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짙은 연기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화재현장이 있고 건물 붕괴 위험이나 유독가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도 곳곳에 숨어 있다. 대형 산불이나 수난사고처럼 사람이 직접 모든 지역을 살피기 어려운 재난도 적지 않다.
이런 현장에서 열화상카메라는 소방관의 또 다른 눈이 되고 드론은 사람의 시야가 닿기 어려운 곳까지 살핀다. 로봇은 사람이 진입하기 위험한 공간에 먼저 들어가 현장 정보를 수집한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다양한 정보를 분석해 제공한다면 현장지휘관과 소방대원은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
재난의 양상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만큼 이러한 변화는 더욱 중요하다. 초고층·대형 건축물이 늘고 산업시설은 복잡해졌으며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등 새로운 위험요인도 등장했다. 기후변화로 대형 산불과 극한호우의 위험 역시 커지고 있다. 기존의 인력과 장비만으로 모든 위험에 대응하기에는 재난환경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
정부가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소방 분야 투자도 한층 강화됐다. 약 280억 원을 투입해 4족 보행로봇 40대를 신규 도입하고 무인소방로봇 9대와 산불전문진화차 3대 등 첨단장비도 확충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소방 연구개발(R&D) 예산도 전년도 503억 원에서 608억 원으로 늘렸다.
중요한 것은 첨단장비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장비가 실제 재난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일이다.
소방청은 내년 45억원 투입을 시작으로 재난현장에서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해 필요한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재난안전 피지컬 AI'연구개발도 본격 추진한다. 다양한 재난환경에서 기술의 성능과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고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단계적으로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AI 임무 모듈을 개발해 로봇·드론·중장비 등 다양한 장비에 적용하고 사람과 로봇은 물론 로봇과 로봇이 서로 협업하는 대응체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목표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정보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재난환경을 인식하고 수색·구조·감식·잔해 제거 등 필요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분명하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기 위해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기술을 먼저 보내는 것이다.
붕괴 가능성이 높은 건물이라면 로봇이 먼저 진입해 위험요인을 확인할 수 있다. 유독가스 현장에서는 탐지장비와 로봇이 위험구역을 파악하고 광범위한 산악이나 수난현장에서는 드론이 수색 범위를 좁혀 줄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정보는 소방대원이 어디로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재난현장에서 최종적인 판단과 구조활동의 중심은 사람이다. 급변하는 상황을 읽고 구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며 순간순간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현장에 있는 소방대원의 몫이다.
의료기술의 발전이 더 정확한 진료를 가능하게 했듯, AI와 로봇 역시 보이지 않던 위험을 보여주고, 파악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분석하며, 사람이 감수해야 할 위험을 줄여주는 기술이다.
소방청은 첨단장비 확충과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재난현장에서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가겠다. 기술이 소방대원의 경험과 판단에 힘을 더하고 그 힘이 국민의 더 안전한 일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미래 소방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