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 영상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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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고모리 저수지 인근 식당 '욕쟁이할머니집'을 운영한 고(故) 정의만씨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욕쟁이 할머니'가 4일 전국 메가박스에서 개봉했다. 정씨의 아들인 홍 감독이 기획·제작·연출을 맡았다. 아들이 그리움을 담아 기록한 어머니의 삶은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식당 문을 열자 영화 홍보물이 보였다. 내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벽에 걸린 붓들이었다. 제 몫을 다한 붓들이 이제야 나란히 누워 쉬는 듯했다. 저 많은 붓으로 얼마나 많은 글씨를 썼기에 저토록 고요히 잠들었을까. 그 앞에 서 있으니 문득 영화 속 어머니의 영면이 떠올랐다. 4층 갤러리에서 홍 감독과 마주 앉았다. 시사회가 끝난 뒤에도 마음에 남았던 장면들을 하나씩 꺼냈다.
◇ 틀니 냄새를 피하던 아들, 새벽마다 촛불을 켜다
서예가이자 화가이기도 한 홍 감독은 "처음부터 효자였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부터 글씨 쓰기를 좋아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빠듯한 살림에도 화선지와 붓, 물감을 마련해줬다"며 "그런데 정작 자신은 어머니의 틀니 냄새가 싫어 슬쩍 자리를 피한 적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 솔직한 고백을 듣고 나니 영화 속 아들이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200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인 2009년 어머니가 쓰러졌다. 홍 감독은 "심청이의 공양미 삼백 석을 떠올리며 어머니가 다시 눈을 뜨기를 바라 새벽마다 촛불을 켜고 기도했다. 어머니의 수의까지 준비하면서도 기도를 이어갔다"고 돌아봤다. 간병을 하던 그는 자신을 여기까지 키워준 어머니에게 이제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의까지 준비하면서도 기도를 이어갔다.
홍 감독은 "어머니가 석 달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그때의 감격은 말로 다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깨어난 뒤에도 석 달을 더 공양을 올렸다. 누나들은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겠다는 막내의 뜻을 존중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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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모신 어머니에게 홍 감독은 연필을 건넸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당신이 살아온 날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침대 아래 바닥에 앉아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빠듯한 살림에도 아들의 손에 붓을 쥐여줬던 어머니와, 이제 어머니의 손에 연필을 쥐여드리는 아들이 한 방에서 그림을 그렸다.
'욕쟁이 할머니'는 가족의 영화다. 그림 한 점은 때로 한 사람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를 그리워했는지 들려준다. 빈센트 반 고흐의 꽃에서 새 생명을 향한 축복을, 클로드 모네가 그린 아내의 모습에서 이별의 슬픔을, 이중섭의 작은 은박지에서 멀리 있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읽듯, 홍승표가 그린 모자의 모습에서도 붓끝 너머 한 가족의 시간이 보인다. 그 방에서 어머니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동안, 어머니는 당신의 생애를 자신의 손으로 그려나갔다.
홍 감독에게 새로운 예술혼이 싹튼 것은 어머니를 돌보던 그 일상 속에서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리는 모습과 갈아드린 기저귀 한 장에서 어머니가 살아가는 하루를 보았다.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기저귀와 속옷을 갈아드리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머니 곁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이 즐거웠다"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시간이 어머니의 삶이고, 예술혼으로 태어났다고" 부연했다.
서예가이자 화가인 홍 감독이 카메라를 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림에는 모자의 모습을 담았다. 영상에는 어머니가 연필을 움직이는 손과 두 사람이 주고받던 말, 그림 한 장이 완성되기까지 함께 보낸 시간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돌보며 하루하루 찍어둔 영상이 다큐멘터리 '욕쟁이 할머니'가 됐다.
이 기록에는 홍 감독이 새 가족을 만난 인연도 담겼다. 영화에서 어머니에게 링거를 놓는 간호사가 지금의 아내가 됐다. "당시 아내는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의 수간호사였고 그는 어머니를 돌보는 홍 감독을 보며 이 사람과 가족이 되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단다. 두 사람은 결혼해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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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홍 감독이 편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어머니의 장례 장면이었다. 그는 "화면을 보다가 울고, 다시 편집을 시작했다가 또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삶을 끝까지 기록하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보답이라는 마음으로 편집을 마쳤다"고 덧붙였다.
시사회에서 어머니의 관 위에 놓인 명정에 글씨를 쓰는 장면을 떠올리며 획을 긋던 마음을 물었다. 평생 붓을 잡아온 사람에게도 어머니를 보내며 긋는 획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한 획을 마치면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하고, 그렇다고 그 획을 멈출 수도 없는 아들의 마음이 화면 너머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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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일군 고모리의 '욕쟁이 할머니' 식당은 지금도 손님을 맞는다. 직접 담근 된장과 시래기로 끓인 국이 밥상에 오른다. 이날 홍 감독이 염장통에서 시래기를 건져 올리던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아들은 갤러리에서 어머니의 그림을 보여주고 극장에서 어머니의 삶을 들려준다. 고모리에서는 어머니가 차리던 밥상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어머니를 '욕쟁이 할머니'라 불렀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거친 말에 담겼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손님의 허기를 살피고, 빠듯한 살림에도 막내아들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해준 어머니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침대에 누웠을 때, 막내는 곁에 앉아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도록 손에 연필을 쥐여드렸다.
침대 위 어머니와 그 아래 바닥에 앉은 아들을 다시 떠올린다. 은하계의 별들을 선으로 이어 별자리를 그리듯,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보낸 하루하루를 이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고모리의 작은 방에서 시작된 모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 곁에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별자리 하나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