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벨기에 왕궁 |
강제조항 이후 여성정계진출 탄력
벨기에 여성이 처음으로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1948년,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늦은 편입니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는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여성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제기될 정도로 여성의 정치적인 발언권이 약했고, 대표성도 상당히 저조했습니다.
그러나 1944년 프랑스에서 여성들에게 제한 없이 부여하자 벨기에에서도 민주주의적 가치에 관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벨기에의 여성 정치는 오랜 침체기를 거쳐 유럽의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성 쿼터제를 실시하면서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먼저 벨기에는 정부 부문, 즉 자치위원회와 자문기구 등에서부터 성 쿼터제를 실시했습니다. 1987년 5월 플랑드르위원회(Flemish Council)는 지방자치위원회를 1/3 이상은 여성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을 법령에 규정했습니다. 이후 1990년과 1994년에는 정책결정 과정과 자문기구에서 여성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남녀평등과 여성할당제를 내용으로 하는 관련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후보를 최소한 남녀 동수로 할 것을 규정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별다른 강제 수단을 규정하지 않아 한계점이 드러났지요.
이 때문에 1997년엔 후보 수준이 아니라 결과에서 균형을 요구했고, 위반에 대한 강제조치도 명시한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 법엔 모든 자문기구는 한 성이 2/3를 넘을 수 없으며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자문기구는 유효한 의견을 제출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정당의 선거명부에서도 여성이 최소한 1/3이 되지 않으면 관계당국에서는 명부의 접수를 거부해야 한다는 조항을 두었습니다.
![]() |
벨기에 여성의원이 의회를 방문한 인도 여성의원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2010년 국제의원연맹(IPU)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45%), 네덜란드(40.7%) 등 북유럽 국가들의 강세 속에 벨기에도 39.3%로 9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 2006년 34.7%에서 소폭 늘어난 것이지요.
여성할당제 위해 여성인력뱅크 운영
지난 2007년 기 베르호프스타트 총리 내각에서는 20명 각료 가운데 여성은 5명으로, 이들은 고용과 경제부, 소비 보호와 공중보건, 환경부·여성부를 담당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성역할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분야를 맡은 것입니다.
특히 남녀평등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부는 1985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여성의 지위에 관한 유엔회의 직후 발족했습니다. 1974년부터 여성 관련 부처가 있었지만, 1985년부터 독립된 부서로 분리된 정책 영역을 담당하게 된 것이지요.
벨기에의 성 쿼터제 시행에서 주목할 점은 법에 반대하는 의식을 변화시키고, 아울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위원회와 자문기구가 정해진 여성 할당을 채우지 못하자 ‘여성이 없어서 충원할 수 없다’거나 ‘여성은 필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같은 반대의 목소리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여성인력뱅크인 ‘플러스펀트(Pluspunt)’를 창설했습니다. 플러스펀트는 관심 있고 능력 있는 여성들을 뽑아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연합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현재 벨기에 여성들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수준의 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교육에서도 중등교육이 55.7%, 고등교육이 53.1%에 이를 정도도 높습니다.
6세부터 18세까지 무상의무교육과 의료비 지원, 출산과 양육에 대한 가족수당 지급, 출산휴가 제도 등 질 높은 교육과 가족복지제도는 여성의 활발한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한 밑거름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