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만의 귀향> 안장되는 유골<YONHAP NO-1842> | 0 | 일본 홋카이도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봉환단이 2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서 115위의 유골을 안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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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강제노동 희생자 115명이 고국산천에 몸을 뉘었다.
홋카이도 조선인 희생자 유골 115위(位)의 3000㎞가 넘는 귀환길을 이끈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이하 귀향추진위)는 20일 오전 최종 목적지인 경기도 파주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 도착했다.
귀향추진위는 한 줄로 늘어서 흰 장갑을 끼고 만장과 위패, 유골 115위를 납골당에 모셨다.
사루후쓰(猿拂) 아사지노(淺茅野) 일본육군비행장 희생자 유골 34위, 슈마리나이(朱鞠內) 우류(雨龍)댐 희생자 유골 4위, 비바이(美唄) 토메이(東明)의 절 조코지(常光寺) 안치 유골 6위, 삿포로(札晃)의 사찰 혼간지(本願寺) 별원 안치 71위 유골 순서로 납골당에 모셔졌다.
납골당에는 가수 정태춘씨가 강제 노동 희생자를 위해 쓴 노래인 ‘징용자 아리랑, 달아 높이 곰’ 가사가 동판에 새겨져 붙었다. 또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손수 쓴 ‘70년 만의 귀향’이라는 글귀도 붙었다.
이번 귀향길에 참가하고 싶었으나 출발 직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참가하지 못했던 현흥순씨(77)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현종익씨(1916∼1942)의 유골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번 귀향길은 열흘 동안 일본 열도를 횡단하며 바다를 두 번 건너 육·해·공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한 고된 여정이었다. 항공편을 이용하면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지만, 참가자들은 강제노동 희생자의 흔적이 있는 일본 각지를 돌며 순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