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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종교개혁의 성(聖)과 속(俗)

[칼럼] 종교개혁의 성(聖)과 속(俗)

기사승인 2016. 10. 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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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10월은 종교개혁 499주년이 되는 달이다. 종교개혁은 단순한 종교적 사안이 아니었다. 유럽 역사의 진로를 바꾼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의 일대 혁명이었다. 당시의 가톨릭은 전 유럽인의 삶을 통제하는 거대한 정신적 굴레였다. 그 굴레를 풀어헤친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와 더불어 중세의 폐쇄적 세계관으로부터 인간 정신을 해방시킨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종교개혁은 중세기의 끝에 여명을 비추며 솟아올라 모든 것을 밝힌 태양’이라고 평가했다.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 한 사람의 업적이 아니다. 루터 이전부터 적잖은 인문학의 지성들이 혹독한 탄압을 무릅쓴 채 종교개혁의 물길을 트고 넓히고 깊게 파나갔다. 성서를 맨 처음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의 시신은 무덤에서 끌려나와 불속에 던져졌다. 체코의 종교개혁자 후스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화형을 당했다. 피렌체 종교재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사보나롤라의 사체는 다시 장작더미에서 불태워졌다. 모두 루터 이전의 일이다.

우신예찬(愚神禮讚)을 쓴 에라스무스, 튀빙겐대학 교수였던 멜랑크톤, 취리히 대성당의 사제였던 츠빙글리, 개신교의 기본교리를 체계화한 <기독교강요>의 저자 칼뱅 등은 루터와 함께 또는 그 이후에 종교개혁의 횃불을 이어간 인문학의 대가들이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작센 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를 비롯한 신성로마제국의 제후와 귀족들, 당시의 신흥세력인 도시 상공인들, 농노(農奴)로 전락한 농민들이 종교개혁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속의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유럽인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새로운 가치체계의 출발이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모든 부면에서 혁신이 요구되는 총체적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포퓰리즘 정치의 천박성과 졸렬함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의 불평등과 양극화, 지역·이념·계층에 따라 갈가리 찢긴 파멸적 분열상, 극단적 이기주의로 무장한 개인과 집단, 방향을 잃어버린 공교육, 선정적(煽情的) 상업주의로 오염된 문화·예술, 세속적 성취에 눈멀어 영성(靈性)을 잃어버리고 사회적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종교들…. 어디서부터 개혁의 칼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우리네 상황은 위중하기 이를 데 없다. 위기라는 인식조차 없는 정신적 해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징후다. 개혁을 넘어 혁명적 개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달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문직 종사자의 성범죄는 종교인, 의사, 예술인, 교수, 언론인, 변호사의 순으로 나타났다. 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른 종교인이 5년간 450명에 이르고 성직자의 성범죄 발생률은 증가 추세인 것으로 밝혀졌다. 종교계의 한 귀퉁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루터는 당시의 로마 가톨릭을 향해 95개조의 항의문을 썼지만, 오늘의 종교계를 향해서는 950개조의 항의문으로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베드로 대성당 부럽지 않게 화려한 종교 시설들이 여기저기 솟아오를수록 종교에 대한 신뢰는 반비례로 추락하기만 한다.

그러나 절망은 이르다. 종교가 이처럼 본분을 저버리고 부패했을 때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정신의 자유와 양심의 순결을 지키려는 소수의 신앙인과 인문주의자들이 개혁의 횃불을 치켜들고 철옹성 같은 종교권력·정치권력에 처절하게 저항했다. 그 저항의 횃불은 성(聖)의 영역을 넘어 속(俗)의 세계를 환히 밝히며 나라와 사회를 혁신하고 삶의 바탕을 송두리째 갈아엎었다. 종교와 인문학의 역할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역사의 산 교훈이다. 정치판에 부평초(浮萍草)처럼 떠다니는 폴리페서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종교 인구는 개신교 21%, 가톨릭 7%, 불교 22%로 집계됐다. 다른 종교들까지 포함하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제도종교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종교의 개혁 없이는 시민사회와 국가공동체의 개혁도 불가능하다. 종교계와 인문계의 양심들이 오래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츠빙글리의 외침이 500년의 세월을 건너 우뢰처럼 들려온다.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없는 종교는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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