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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인터뷰①] 고훈정 “예그린어워드 신인상 수상 후 책임감 커졌다”

[AT인터뷰①] 고훈정 “예그린어워드 신인상 수상 후 책임감 커졌다”

기사승인 2017. 01. 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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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신인상이라는 걸 주셨는데 상을 받고 나니 책임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어디 가서 못난 모습 보이지 말고 무대에서 더 잘해야겠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더 커졌다.”

지난해 데뷔 7년 만에 뮤지컬 ‘더맨인더홀’로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한 고훈정은 상을 받은 기쁨보다 큰 책임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음악 하나만 보고 달려오던 27세 고훈정에게 훅 들어온 뮤지컬. 연기·춤 등은 전혀 모르고 시작한 만큼 고민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배우는 작업에 몰두했다는 고훈정의 책임감이 몹시 미덥다.

배우로서 자기관리도 철저하고 늘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한 고훈정.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 맞물려 ‘더데빌’과 ‘비스티’가 개막해 ‘어쩌면 해피엔딩’ 폐막 전 열흘 동안 그는 한 번에 세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 이후에도 두 작품을 오가며 관객과 만나는 것에 대해 고훈정은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달리면 된다”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바빠질지 모를 고훈정을 ‘더데빌’ 개막 25일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데뷔 후 2년 반가량 공백이 있었지만 고훈정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하고 무대에서 살아낸 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무게감이 느껴졌다.

- 성악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뮤지컬배우가 됐나.
“일단은 록을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뮤지컬배우를 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유튜브 보는 걸 즐기는데 내가 기타리스트도 되게 좋아한다. 조 새트리아니, 스티브 바이, 잉베이 맘스틴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록을 좋아하다보니까 당연히 기타리스트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가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인 덩컨 셰이크라는 사람을 알게 됐고 그 사람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다. 2009년 초에 그 작품을 봤는데 ‘이게 뭐지? 뮤지컬도 음악이 이렇다고?’ 하면서 검색을 했다. 마침 ‘스프링 어웨이크닝’ 오디션을 하고 있더라. 궁금해서 지원을 해봤는데 뽑아주셨다. 그게 내 운명의 첫 출발이다. 그 전까지 연기는 아예 모르는 장르였다. 내가 연기자를 해볼 생각도 전혀 안 해봤고 음악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뮤지컬이 훅 들어왔다. 너무 재미있는 사건이고 그게 또 내 인생을 여기까지 흘러오게 바꿔놓은 큰 일이다. 내 인생의 첫 뮤지컬 오디션인데 감사하게도 나를 간택해주셨다.”

- 뮤지컬을 시작하고 슬럼프 등 위기를 느낀 적이 있나. 
“굳이 말씀드리자면 ‘스프링 어웨이크닝’ 끝나고서는 ‘뮤지컬배우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너무 잘하는 선배들이 옆에 계셔서 그랬나보다. 음악이 좋아서 했는데 해야 될 게 너무 많더라. 연기도 잘 해야 되고 춤도 잘 춰야 되고 노래 잘하는 건 기본이고 집중력도 좋아야 되고. ‘정말 뮤지컬배우가 쉬운 길이 아니구나’ 생각을 했다. 내가 연차에 비해서 필모그래피가 많지 않은 이유가 끝나고 2년 반 정도 공연을 안했다. 학교 다니고 음악 관련 활동을 하다가 무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다시 한번 해볼까’ 하고 소극장 뮤지컬부터 시작해온 게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 이후엔 ‘배우로서 조금 달려봐야겠구나’ 마음먹고 지금까지 달려와서 딱히 슬럼프 같은 건 없었던 것 같다. 계속 집중하고 배웠다. 많이 부족하니까 배우는 작업에 좀 많이 몰두했다.”

- 무대로 돌아온 계기는 무엇인가.
“‘스프링 어웨이크닝’ 때 같이 공연했던 배우들과 친하니까 계속 만나고 형들, 후배들 공연하는 것도 보러 갔다. 계속 열심히 잘하고 있는 걸 보니까 ‘나도 저들처럼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원 형이 하는 공연도 보러 가고 이충주 공연도 봤고 손승원이 했던 ‘밀당의 탄생’도 보러 갔다. 김지현 누나도 그렇고 ‘나랑 무대에서 같이 했던 배우들인데’ 그런 생각에 주변 배우들한테 자극을 받아서 다시 하게 됐다.”

- 데뷔 7년 만에 뮤지컬 ‘더맨인더홀’로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7년간의 배우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감회는 어땠나.
“많은 걸 배웠고 힘든 여건 속에서 공연도 많이 해봤다. 생각해봤을 때 ‘아! 내가 이런 선택들을 해서 배우길 잘 했구나’ 싶더라. 그래서 사실 상을 받았을 때 기쁜 것도 기쁜 건데 힘들었던 순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마음이 힘들었다기보다 지방 가서 세트를 직접 세우는 등 상황들이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런 것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구나’, ‘결국엔 다 피가 되고 살이 돼서 또 다른 감사함을 표할 수 있게 된 매개들이 됐구나’ 하는 것이 감사했다. 한마디로 ‘헛된 시간 안 보냈구나’ 이게 제일 컸다. ‘다 이유가 있었구나’ 느꼈다. 늦은 나이에 신인상이라는 걸 주셨는데 상을 받고 나니 책임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뭔가 인정해서 상을 주셨으니까 앞으로는 그에 상응하는 무대를 보여드려야 되니까 ‘어디 가서 못난 모습 보이지 말고 무대에서 더 잘해야겠구나’ 하는 책임감이 훨씬 커졌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더 커졌다.”

- 라이선스와 창작을 떠나서 아직까지 ‘뮤지컬’ 하면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극장의 매력을 좀 어필해 달라. 
“물론 창작 대극장 뮤지컬도 많다. 생명력도 있고 좋은 작품도 많다. 소극장 뮤지컬도 좋은 작품이 너무 많다. ‘커서 좋고 작아서 나쁘다’ 이런 기준으로 말할 건 절대 아니다. 소극장만의 매력은 가까운 거리에서 디테일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예술분야도 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소극장에서 연기하고 공연하는 게 힘든 이유가 눈 하나 깜박이는 것도 다 보인다. 그래서 진짜 무대 위에서 제대로 살아내지 않으면 극 안에서 줄 수 있는 정서들을 바로 앞의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지 못한다. 그런 모습들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오셔서 보는 것이다. 못 보셨던 분들도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진실 되게 살아내는 2시간여를 보시면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다. 다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게 소극장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정말 미니멀하고 디테일한 감정들, 대사, 연기, 정서 표현들 다 볼 수 있다. 물론 그건 배우들이 제대로 해냈을 때의 문제인데 제대로 해내고 계신 선배님들이 많고 나도 제대로 해 내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지금 생각하기엔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매력을 한번 보면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실 것이다. 그래서 마니아도 많이 생기고 사랑해주시는 분도 많이 계시다. 오히려 큰 극장에 가면 매력이 반감되는, 소극장이어서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런 경우다. 극장이 너무 크면 아기자기하고 따뜻함이 분산될 수 있다. 무대가 방 안이지 않나. ‘어쩌면 해피엔딩’이야말로 소극장에서만 줄 수 있는 전형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영상 촬영·편집=이홍근 기자

- ‘팬레터’, ‘더맨인더홀’, ‘어쩌면 해피엔딩’ 등 최근 호평을 받은 좋은 작품의 초연에 함께 했다. 본인만의 작품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작품마다 다르다. 오디션을 본다든지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이 작품은 이런 것 때문에 한번 해보고 싶다’, ‘이 작품은 음악이 좋아서’, ‘연출님과 만나고 싶어서’, ‘이 작품은 재밌게 해낼 수 있고 재미있게 달려갈 수 있는 대본이라서’ 등 다 다르다. 그래서 특히 고집하는 건 없다. ‘아! 내가 이걸 잘해낼 수 있을까’는 있다. 연습해서 할 수 있겠다 싶으면 하게 되는 것이다.”

- 현재 ‘어쩌면 해피엔딩’에 이어 ‘더데빌’, ‘비스티’까지 출연이 겹치는데 왜 그렇게 일을 몰아서 하는지, 스케줄 조율과 컨디션 관리 등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고민을 많이 해서 ‘더데빌’ 참여하는 것도 결정했고 ‘어쩌면 해피엔딩’이랑 ‘비스티’ 같은 경우에는 작년부터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은 지켜야 되는 것이고. 사실 무리가 될 수는 있는데 ‘비스티’는 잘해냈던 작품이고 그때 기억을 되살려서 집중 있게 하면 된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계속 하고 있고 분량적으로도 무리가 되는 작품은 아니다. ‘더데빌’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했다. 물론 매일매일 공연을 해야 되는 부담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힘들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아니다. ‘천사에 관하여 : 타락천사 편’이야 말로 정말 체력적으로 부담되는 작품인데 그것도 거의 매일 공연을 해왔다. 3개월 정도를 원캐스트 같은 스케줄로 해 내보니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컨디션 관리 잘하면 못할 건 없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건데 나는 잠을 충분히 잔다. 잠만큼 배우한테 컨디션 관리하기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잠을 자야 좀 정신도 또렷해지고 목 컨디션도 좋고 바이오리듬이 좋아지니까. 그래서 잠을 최대한 잘 자려고 한다. 적게 자도 잘 자면 되기 때문에 잘 자려는 노력들을 한다. 그런 면에서 못할 스케줄은 아니다.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달리면 될 것 같다. 많이 걱정하시는데 걱정하시는 것에 비해서 무대에서 잘 해내면 그것에 박수쳐주실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내가 잘 해야 한다.”

- 꼭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뮤지컬배우는 누구인가.
“너무 많이 계시고 지금 다 만나고 있다. 거의 다 만났다. 여자배우는 김지현 선배, 전미도 누나 다 만났고 이지숙도 지금 같이 하고 있고 너무 다 좋다. 김재범 형, 정문성 형 다 그렇다. 지금 ‘더데빌’에서 같이 하고 있는 임병근 형, 장승조 형 지금 한 명 한 명 만나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조승우 선배님이랑도 좋은 기회가 되면 같은 무대에서 연기해볼 영광을 누렸으면 좋겠다.”

- 창작뮤지컬을 사랑하는 만큼 음악감독이나 연출에도 도전할 계획이 있는지.
“감히 내가 그렇진 않다. 나중에 50대가 돼서, 배우로서 기력이 쇠했을 때 ‘또 내가 공연 쪽에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면 그때쯤 생각해볼 텐데 지금은 플레이어로서 음악이든 배우든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관심은 당연히 있는데 지금 어린나이에 도전을 하기에는 내가 경험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내가 잘 따르는 연출님들을 보면 공연을 하면서 인생에서 묻어나오는 연륜, 배려 이런 것들이 있다. 더 많은 경험들을 하고 어떤 사람이 마련돼야 되는 것 같다. 개인의 플레이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건 인격적인 부분도 굉장히 많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잘 아우르고 잘 보듬고 때로는 잘 몰아치면서 갈 수 있느냐, 그건 살면서 삶의 경험들이 많이 주는 것 같다. 경험들을 더 해야 도전할 수 있고 나도 더 공부해야 되고. 하나하나 공부해나가고 있다. 나중에 10년 뒤에 기회가 되면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한 10년 뒤쯤 바라보고 있다.”

- 얼마 전에 단독콘서트를 했다. 어떤 계기로 준비한 것인가.
“작년 5월에 ‘트루맨쇼’라는 공연에서 ‘나 혼자 한다’고 나 혼자 MR 틀고 20곡 정도를 불렀다. 내가 해왔던 넘버, 하고 싶은 넘버 위주로 했다. 그때 내 트위터 팔로어 수가 1200명 정도 됐는데 3000 팔로어가 되면 단독콘서트를 한번 더 하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달했다. 10월인가 11월에 3000 팔로어가 됐더라. 약속을 지켜야 되니까 팔로어 수가 3000에 가까워올 때 ‘슬슬 할 때가 됐다’ 생각했다.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 피아니스트 오성민에게 물밑작업을 해 놨다. 극장 대관부터 알아봐야 되는데 다행히도 여러 군데에서 도움을 주셨다. 대명문화공장의 한경수 PD님께서 도움을 주시고 흔쾌히 극장 사용을 허락해주셨다. 또 지금 ‘어쩌면 해피엔딩’ 하고 있는 음향감독님, 조명감독님, 무대감독님 다 도움을 주셨다. 세팅이 되면 뭘 할 것이냐에 집중을 했는데 성민이랑 퍼커셔니스트 김현기랑 같이 진정한 의미의 언플러그드는 아니지만 언플러그드의 소소함, 강한 넘버든 약한 넘버든 우리만의 해석을 해서 한번 해보자 했다. 안했던 넘버 위주로 소소하게 꾸려봤다. 마침 보러온 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었다.”

- 특정 타이틀을 정해서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열 계획은 없나.
“물론 당연히 있다. 내가 콘서트하는 걸 너무 좋아하고 일단 노래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 정기적으로 한다기 보다는 최대한 이슈를 많이 만들어서 많이 하고 싶다. 나 혼자 힘으로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니까 도와주시는 분들이랑 협력을 해서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최대한 기회를 많이 마련해서 하고 싶다.”

- 곧 데뷔 10주년이 된다. 머지않은 10주년까지의 목표가 있다면.
“딱히 목표는 없다. 1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내가 마음먹었던 시기가 있다. 딱 서른이었다. 서른에는 내가 배우로서 최소한 10년 여기서 열심히 해봐야 나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도 그랬다. 내가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노래 부르고 기타 치고 했지만 음악을 전공한 게 스무 살이라고 치면 서른 살 때 음악적인 것에서 돌아봤을 때 약간 뭔가 느낌이 나왔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은 이렇게 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지나고 지금 반 했는데 마흔쯤에 돌아봤을 때 ‘아! 배우가 이런 거구나’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10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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