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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국립오페라단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손수연의 오페라산책]국립오페라단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기사승인 2019. 07. 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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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로 구현된, 재화만이 유일한 가치인 문제적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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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범죄자 베그빅 부인 일당이 경찰에게 쫓기다가 차가 멈춰서고, 더는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시작된다. 베그빅 부인은 차가 멈춰버린 그 땅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그물의 도시 ‘마하고니’라고 이름 짓는다.

인간은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것에, 가본 곳보다 가본 적이 없는 곳에 환상을 품고서 자신만의 단단한 성을 지어 올린다. 완성된 그 성은 실제와 가깝기도 하고 혹은 전혀 다르게 펼쳐지기도 한다. 대본을 맡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작품의 배경이 된 미국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반영해 욕망의 도시를 그려냈다. 당시 베르톨트는 미국에 가보지 않았지만 마치 직접 경험한 것처럼 타락한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마하고니를 창조했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관객들은 비록 과장이 있을지언정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비난하긴 어려울 것이다. 또한 1930년에 발표된 오페라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에 더욱 불편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이처럼 현실고발적인 또는 미래를 예견했다 할 수 있는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그 무렵 독일에서 유행하던 표현주의 음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재즈, 래그타임, 벌레스크 형식 등 당시 최신 트렌드에다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 르네상스풍의 교회음악 등 다채로운 음악을 섞어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음악을 작곡했다.

때문에 현대 오페라라고 하면 연상되는 어렵고 듣기 거북한 음악의 향연은 없다. 오히려 작품에 등장하는 앨라배마송을 미국의 록밴드 ‘도어스(The Doors)’가 데뷔앨범에 리메이크 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중독성이 있는 선율과 가사들이 관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이번 작품의 연출은 국립현대무용단의 안성수 감독이 맡았다. 안성수 감독은 조화로운 가운데 속도감 있는 무대를 만들어내는 안무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오페라 역시 균형 잡힌 무대 위를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몸짓으로 작품의 행간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13일 공연에서 바일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무용수들은 고전적인 발레에서 비보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춤을 선보였는데 이는 작품의 음악을 심도 깊게 해석한 안무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다만 분절적으로 구성된 오페라의 모든 장면마다 무용이 등장하다보니 지나치게 시각적인 요소에 치우치게 됐다. 음악적 메시지를 무용으로 풀어낸 것은 인상적이었으나 상대적으로 브레히트의 예리한 풍자가 담긴 대사에 집중하기 어려워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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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황금광 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벌목공, 창녀, 범법자, 사기꾼 등 하층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호화로운 바로크 또는 로코코 시대의 의상을 걸치고 무대에 선다. 과장되게 부풀린 의상을 입은 인물에 비해 무대는 간결하고 소품마저도 독특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화려한 의상은 단순한 무대와 기묘한 조화를 이뤘는데 외양은 화려하되 내면은 빈약하기 그지없는 인물들과 마하고니의 두 가지 얼굴을 의도적으로 상징한 장치라고 생각된다.

이날 성악가들의 연기와 노래는 전반적으로 매우 뛰어났다고 본다. 오페라와 서사적 음악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작품의 특성상 전문 성악가가 대사와 연기, 거기에 풍부한 가창력이 요구되는 노래까지 소화하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유럽에서도 노래가 가능한 연극배우가 종종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런데 이날 지미 역할을 맡은 테너 미하일 쾨니히와 제니를 노래한 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엑사는 빼어난 연기와 가창을 선보였고, 대사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상황에 알맞게끔 살려내 노래 이상의 가치를 부여했다.

또한 베그빅 부인 역의 메조소프라노 백재은 등 우리 성악가들 역시 독일어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하며 이질감 없이 극에 녹아들었다. 특히 트리니티 모세를 노래한 박기현은 농후한 음색과 볼륨을 가진 바리톤으로서 이후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니엘 레일랑이 이끄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무대 위와 밸런스를 맞추면서 자연스러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각적 효과가 압도적이었던 이날 공연에서 레일랑은 내용에 따라 맥락 없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음악의 색깔을 매끄럽게 조절했고 때때로 위협적으로 때로는 블랙유머가 넘치는 분위기를 표현했다.

1막1장에서 마하고니를 건설하며 베그빅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 마하고니가 태어나는 건 모든 상황이 너무나 나쁘고 평온함이나 화목함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인간이 의지할 만한 곳이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오로지 재화만이 유일한 가치인 그 도시가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진 것은 의지할만한 곳이 아무데도 없기 때문일까.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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