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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칼럼] ‘다함께 잘사는’ 인문학의 도시 칠곡

[조향래 칼럼] ‘다함께 잘사는’ 인문학의 도시 칠곡

기사승인 2020. 09. 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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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내는 할머니들과 '칠곡 가시나들' 유명세
'7년 연속 브랜드 대상' 문화·교육 선도 도시
조향래 논설위원 0611
조향래 논설위원

지역에 민정시찰을 나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침 식사를 하려고 이름난 콩나물 국밥집을 찾았다. 그런데 손님들 국밥에 손수 계란 하나씩을 까서 넣어 주던 주인 할머니가 대통령을 보더니 “얼씨구? 생긴 건 박정희 닮아서 잘도 처먹네. 누가 보면 대통령인 줄 알겄다” 라고 화끈한 인사를 건냈다. 그러더니 “그래도 박정희는 큰일이나 했지. 옛다, 더 처먹어” 하며 계란 하나를 더 넣어줬다. 그러자 대통령은 “콩나물 국밥이 소문대로 맛있다”고 껄껄 웃으며 “할머니, 내가 박정희를 닮은 것이 아니고, 박정희가 날 닮은 거요!” 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1970·80년대 경북 칠곡 왜관에도 음식맛 못지않게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식당 어귀에 들어서면 사회적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할머니의 걸쭉한 육담부터 한 사발 얻어 먹어야 했다. 그게 반갑다는 인사였다. 그 할머니의 곡절 많은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기자와 마주 앉은 할머니는 순박한 모습의 소녀시절 사진과 연필로 꾹꾹 눌러쓴 시(詩) 구절이 든 앨범을 펼쳐보였다. 낙동강변에서 자란 할머니는 꿈 많은 문학 소녀였다. 다부동과 낙동강을 휩쓴 전쟁의 광풍이 여인의 삶도 뒤흔들어 놓았다. 할머니의 욕설은 그렇게 여울져 흐르는 강물이었고, 푹 고아낸 곰탕 국물이었고, 농익은 판소리의 사설이었다.

시집내는 할머니들과 ‘칠곡 가시나들’ 유명세

칠곡은 그런 곳이다. 특히 왜관은 우리 현대사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옛부터 사람과 물류가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었고, 낙동강 따라 통상과 교역에 종사하던 왜인들이 거주를 하면서 왜관(倭館)이라는 지명도 생겼다. 경부선 철도 개통과 더불어 왜관역이 생기고 군청이 이전하면서 명실공히 칠곡의 중심지가 됐다. 칠곡은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소통과 화해의 연륜을 지니고 있다.

매원마을은 유교적 이상향을 꿈꾸던 선비들의 오랜 세거지(世居地)였다. 왜관철교는 낙동강 방어선의 참혹한 상흔과 굴곡진 내력을 웅변한다. 가실성당과 베네딕도 수도원에는 사랑과 평화를 희구하는 염원이 스며 있다. 전쟁의 비극이 자비의 전당을 낳았다. 강(江)을 자신의 삶과 문학을 관장한 회심의 일터로 여긴 구상 시인이 낙동강변인 왜관에 정착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왜관은 구상 시인의 문학적 이상향이었다. 시인은 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는 ‘관수세심(觀水洗心)’을 일생의 화두로 삼았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체득하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심오한 철학적 사유에 잠겼다. 그곳에 세운 구상문학관은 칠곡의 잠재된 예술적 역량을 일깨우며 문화적 성숙을 이끌어 주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7년 연속 브랜드 대상’ 문화·교육 선도 도시

‘인문학도시 칠곡’의 탄생은 그만한 연원이 있다. 전국 첫 평생학습대학을 운영했고 평생학습 인문학 축제도 연다. 글 모르던 할머니들이 잇따라 시집을 내고 ‘칠곡 가시나들’이란 영화까지 만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칠곡군이 문화·교육 선도 도시 부문에서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대상’을 7년 연속 수상한 배경이다. ‘인문학도시 칠곡’의 입지와 명성의 재확인이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칠곡이 마을마다 인문학이고 골골마다 인문학이라고 했다. 젊은 이웃이 선생이 되고, 뒷집 할머니가 시인이 되고 배우가 된다. ‘칠곡 가시나들’이 꿈꾸는 인문학적 지향점은 거창한 게 아니다. 칠곡의 인문학은 그저 함께 어울리고 함께 잘사는 것이다. 오래전 욕쟁이 할머니가 나지막이 부르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란 노랫말처럼, 평화로운 자연과 단란한 가정에 대한 소박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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