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사설] 정부, 기업에 ‘보유 달러 매도’까지 요구하나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22501001364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5. 12. 26. 00:00

/연합
기업들이 정부의 '보유 달러 매도' 요구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기업들은 환율 방어의 시급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정부 정책에 따른 대미 투자 자금 확보 등 절실한 달러 수요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8일 국내 7대 기업 관계자들을 소집해 긴급 환율 간담회를 열고 '신속한 달러 매도'를 당부했다. 환율 방어가 '백약이 무효' 같은 상황에 이르자 기업에 손을 벌린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이날 금융기관 보유 달러 유동성 시장 공급 등 '외환 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을 발표하며 외환시장 안정에 적극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이날도 높은 변동성을 보이며 1478.3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24일 외환 당국의 강력한 구두 개입과 해외주식 양도세 비과세 등 대책 발표로 전날보다 33.8원 급락한 1449.8원으로 거래를 마치긴 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하루 만에 30원 넘게 출렁이는 것 자체가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의 달러 매도를 공개적으로 주문한 것은 기업 달러 예금 증가라는 이례적 현상과 무관치 않다. 기업들은 환율이 오르면 달러를 팔아 차익을 챙기려 한다. 하지만 지난 11월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약 537억4400만 달러로 10월 말(443억2500만 달러)보다 21%가량 늘었다. 12월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들이 달러를 쌓아두는 이유는 바로 정부 정책 때문 아니겠는가. 기업들은 한미 관세 협정에 따른 대미 투자를 위해 '실탄 마련'이 급선무인 상황이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 조선 등 전략 산업의 미국 현지 투자 확대를 독려해 놓고 정작 투자용 달러 확보를 색안경 끼고 보니 기업들로서는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주문대로 달러를 팔았다가 투자 집행 시점에 더 비싼 달러를 되사야 할 경우 손해는 누가 책임져 주겠는가. 정부도 기업의 이런 고충을 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환율이 상승하는 근본적·구조적인 원인은 저성장 고착화와 방만한 재정, 정책 신뢰 훼손, 대외 리스크관리 실패 등에 있다. 1%대 성장률 고착화, '슈퍼급' 확장 예산에 따른 국가채무 급증,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 상실 등 환율 불안 요소가 우리 경제에 차고도 넘친다. 정부와 여당이 중대재해처벌법,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 노란봉투법 등 각종 규제 입법으로 경제 성장의 핵심 견인차인 기업의 손발을 묶는 제도를 재고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기업에 달러를 팔라고 손을 벌리는 '구태(舊態)'를 재연하지 말고 정책 신뢰를 회복하고 구조 개혁에 나서는 등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실효적 정책을 적기에 시행하기 바란다. 이번 환율 불안을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