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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되니깐 콘돔 몰래 빼야지”…14주 낙태 허용에 ‘스텔싱’ 말하는 남성들

“낙태되니깐 콘돔 몰래 빼야지”…14주 낙태 허용에 ‘스텔싱’ 말하는 남성들

기사승인 2020. 10.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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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자 일부 네티즌들이 ‘강제로 임신시키겠다’는 등 ‘스텔싱(관계 중 콘돔 빼기)’을 언급했다./출처=네이버 뉴스
#1 2018년 20대 여성 박모씨는 남자친구와 성관계 후 사용한 콘돔을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졌으나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는 박씨가 그를 추궁하자 그제야 “느낌이 덜 나서 관계 중 몰래 뺐다”고 털어놨다.

#2 최모씨(33)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최씨는 남자친구가 준비한 콘돔에 바늘로 뚫은 것 같은 작은 흠집을 발견했다. 남자친구는 ‘불량인 것 같다’고 발뺌했다. 최씨가 이전에 사용한 구멍 뚫린 콘돔 봉투를 찾아 “이건 뭐냐. 구멍 뚫린 걸 알았던 것 아니냐”고 묻자 남자친구는 “구멍난 콘돔으로도 임신이 되는지 궁금했다. 장난이었다”며 변명을 늘어놨다.

이처럼 성관계 중 콘돔 등 피임기구를 제거하거나 훼손·거부하는 행위를 ‘스텔싱(Stealthing)’이라 칭한다. 스텔스(Stealth)는 레이더 등의 탐지에 대항하는 은폐 기술을 뜻하는 단어로, 그 의미가 확장돼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일컫는다. 독일·스웨덴·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스텔싱을 강간에 준하는 성범죄로 보고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스텔싱 범죄에 대한 법적 처벌은커녕 논의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7일 정부가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의 입법 예고 이후 온라인상에서 일부 남성들은 “낙태할 수 있으면 강제 임신시키고 연락 끊어도 되겠다”, “여자가 알아서 지울 테니 콘돔 몰래 빼야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반응은 스텔싱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것을 방증한다.

이에 따라 여성들의 스텔싱에 대한 걱정은 더욱 커지고만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여성 단체는 헌재의 결정을 반기는 한편, “일부 남성들이 낙태가 가능해진 것을 피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할 소지가 있다”며 스텔싱 범죄 확산을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스텔싱 범죄 피해자인 박씨와 최씨 모두 “스텔싱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불안감에 사후피임약을 복용했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일부 남성들은 스텔싱을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혹시 모를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씨도 “이제 임신 초기 낙태가 가능해졌으니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일상화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스레 말했다. 이어 “내가 남자친구에게 캐묻지 않았더라면 임신하고 나서야 콘돔을 뺐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며 “나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들 또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018년 ‘낙태죄 위헌 결정 촉구 의견서’를 통해 “일부 남성들은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몰래 콘돔에 구멍을 내거나 성관계 도중 콘돔을 빼서 임신시키라는 말을 주고받는다”며 “이렇듯 스텔싱은 결코 극단적이거나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고, 비(非)계획 임신은 그 자체로 여성에게 폭력”이라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관계자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하더라도 피임기구 제거에는 동의가 필요하다”며 “지금 당장 우리나라가 해외처럼 스텔싱을 법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겠지만, 성관계 모든 과정에서 동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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