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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재판] 아동·청소년들이 성적 자기결정권 있다?…대법 “신중히 판단해야”

[오늘, 이 재판] 아동·청소년들이 성적 자기결정권 있다?…대법 “신중히 판단해야”

기사승인 2020. 11. 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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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가 외관상 성적 결정 또는 동의로 보이는 언동을 했더라도,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상대방을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예를 들어, 아동복지법상 아동매매죄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죄의 경우 아동 자신이 이에 동의했더라도 유죄가 인정된다는 판시와 같은 취지라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위반,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군인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10월 당시 만 15세인 B양과 성관계를 해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또 같은 해 10∼12월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신체 노출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다른 미성년자인 C양을 협박해 성폭행을 시도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는다.

A씨는 1심인 보통군사법원에서 혐의를 모두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A씨의 혐의 대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만 15세인 피해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미숙하나마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대”라며 A씨의 성적 학대행위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B양이 성관계 도중 거부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이전에는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시하지 않은 만큼 B양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2심은 또 C양에 대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A씨가 C양을 협박할 당시인 10월과 만나기로 계획한 12월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는 점,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도를 드러내지 않은 점, 협박 이후 다른 협박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협박’과 ‘성폭행’ 간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이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B양에 대한 범죄에 대해 “아동·청소년은 사회적·문화적 제약 등으로 아직 온전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지적·심리적·관계적 자원의 부족으로 타인의 성적 침해 또는 착취행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며 “아동·청소년이 외관상 성적 결정 또는 동의로 보이는 언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의 이용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아동·청소년의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 가치관과 판단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 등을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며 “피해자의 연령과 피고인과의 성관계 등을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들어 판단한 것은 성적 학대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이와 함께 “국가와 사회는 아동·청소년에 대해 다양한 보호의무를 부담하며, 법원도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아동·청소년이 특별히 보호돼야 할 대상임을 전제로 판단해왔다”며 “대법원은 아동복지법상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행위 해당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아동이 명시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해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기인한 것인지 가려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C양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도 “A씨는 3개의 계정을 가지고 1인 3역을 했는데, 이 같은 복잡하면서 교묘한 방법을 사용한 이유는 상대 여성에게 기망과 위협을 번갈아 가면서 경계심을 풀고 용이하게 성관계에 나가기 위한 것”이라며 “상대 여성에게 한 위협적인 언동은 모두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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