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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패배자는 심사위원들이 될 것이다

[칼럼]패배자는 심사위원들이 될 것이다

기사승인 2021. 01. 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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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뒤늦게, 요즘 뜨고 있는 무명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프로그램 재방송을 보았다. 학기 말 바쁜 일정을 마치고 여유가 생긴 덕이다.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었다. 그는 편곡한 기존 가요를 자유분방하다 싶게 노래하고 있었다. 본인의 음악 스타일이 무엇인지 묻는 심사위원들에게 그가 한 말은 걸작이었다. “30호 스타일입니다.” 30호는 무명 가수인 그에게 주어진 참가번호였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 스타일이라는 표현을, 재치 있게도 자신에게 부여된 번호를 빌어 말하고 있었다. 멋져 보였다. 비교적 젊은 그만의 패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재방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유튜브 검색을 통해 그가 무대에 오른 신들만을 찾아보았다. 낯설었지만 매력이 넘쳤다. 이효리의 솔로 곡 ‘Chitty Chitty Bang Bang’을 재해석해 역시 자신만의 스타일로 불렀다. 마치 취한 듯 쏘다니다시피 하면서 무대를 장악했다. 사실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그가 한 멘트가 압권이었다.

토너먼트처럼 맞수격인 두 명의 참가자를 경쟁시켜 한 명만 뽑는 형식이었는데, 앞서 부른 참가자가 가창력으로 호평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긴장하고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긴장이 안 된다. 왜냐하면, 나의 경쟁자가 너무 노래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어진 말은 근래 들어 읽거나 들었던 어떤 언어와 비교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패배자는 심사위원들이 될 것입니다.” 뜨악해진 심사위원들에게 그가 덧붙인 부연 설명은 이랬다. 두 명 중 한 명만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심사위원들에게 곤혹한 일이 될 것이며, 두 명의 훌륭한 뮤지션 중 한 명만을 선택함으로써 비교 불가한 차원에서 역시 훌륭한 또 다른 뮤지션을 놓치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말하자면 기회비용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클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 말본새가 얼마나 멋지던지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라라랜드’로 유명한, 데미안 셔젤 감독의 초기작 ‘위플래쉬’(2014년)가 바로 그것이다. ‘위플래쉬’는 재즈에 대한 영화이다. 음악학교에서 스승과 제자가 벌이는 기 싸움은 전율로 다가온다. 스승은 나를 따르라며 말도 안 되는 속도와 표현 불가능한 음악적 감각을 제자에게 요구한다. 드럼 주자인 열아홉 살의 주인공이 감내하기에는 공포로 다가오는 스승의 카리스마는 마침내 그를 좌절하게 한다. 급기야 불미스러운 일로 주인공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스승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우연히 그들은 재즈 공연장에서 조우한다. 스승은 옛 제자에게 다시 자신의 팀에 합류할 것을 권유한다. 도통 알 수 없는 그들의 속내는 심리극을 넘어 서스펜스로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스승의 리드를 버거워 하던 제자는 갑자기 돌변해 스승을 압도한다. 그리고 스승을 파괴라도 할 듯 드럼으로 지휘자와 악단을 리드한다. 청중들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하려던 스승은 이내 체념하고 제자의 리듬에 따른다. 그러면서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향해 묘한 웃음을 짓는 신으로 막을 내린다.

사실 이 영화를 ‘채찍질’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교육은 역시 혹독하게 시켜야 한다는 교훈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선생들이다. 다른 해석은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너! 이젠 네가 나를 따르라’는 일종의 ‘카운터스펙터클(Counterspectacle)’로서 전복의 시도로 이해한다. 필자는 후자의 해석에 더 많이 기울어 있다. 몸은 전자에 속하면서 마음은 후자를 택했으니, 심리상태가 극히 불안정한 인지 부조화의 상태라는 진단을 받을 듯싶다.

이맘때가 되면 되지도 않는 습관이 하나 있다.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평가한 것에 대한 평가자의 무거움을 어떻게든 면피하고자 하는 ‘도피성 성찰’이 바로 그것인데, 엑셀의 줄과 행에 채워진 숫자의 조합을 한 줄로 소트하는 기막힌 프로그램의 능력에 나의 영혼을 판다. 패배자는 심사위원이 될 것이라는 그 무명 가수의 일갈은 비수처럼 필자를 향하고 있다. 솔직히 자기연민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도 객관적이라는 명분하에 상대적으로 청춘들을 한 줄로 세운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한다. 테스 형이 야속하다. 악법도 법이라는….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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