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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버지의 거짓말

[칼럼]아버지의 거짓말

기사승인 2021. 04. 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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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빅 피쉬’는 거짓말에 대한 영화다. 팀 버튼 감독은 ‘에드워드 블룸’이라는 인물을 소환해 ‘아버지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영화는 대니엘 앨리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소설이 주는 감동을 넘어, 팀 버튼 특유의 몽환적인 장면연출로 관객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 마디로 인생 영화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줄을 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빅 피쉬’는 뮤지컬로도 상연된 바 있다. 공교롭게도 개봉 시기가 코로나19 사태 발발 초기와 겹쳐 많은 이들이 관람을 포기했다. 필자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뮤지컬 관람을 포기한 심정은 기대감에 비례해 아쉬움이 더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만약 재상연이 결정되면 누구보다 먼저 표를 구하고 극장을 찾을 것 같다. 무대라는 현장에서 펼쳐질, 모험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아름다운 거짓말’은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도 궁금하다.

대개의 평범한 아버지들은 거짓을 말하는 아이를 마주하게 될 때, 마치 정직(正直)에 대한 신념으로 똘똘 뭉친 화신처럼 굴기 일쑤다. 자식을 반드시 훈육해야 한다는 신탁이라도 받은 듯 불같이 화를 내고 때론 체벌을 가한다. 한데 영화에서는 정반대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거짓말쟁이다. 아들 윌은 그런 아버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가 쏟아내는 무용담은 과장이 심해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한다. 이제 훈육의 주체는 아버지가 아닌 아들이다. 공교롭게도 윌의 직업은 기자인데, 그에겐 사실에 근거해 기사를 써야 한다는 직업윤리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아버지의 거짓말을 대하는 그의 괴로움은 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들에게 절대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아버지의 허풍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에서 흔히 전개되는, 희생이 전제된 ‘화이트 라이’(White Lie)와는 궤가 다르다. 영화에서 아버지의 거짓말이 아름다운 이유는 삶을 모험으로 여기고 실천했던 이가 전하는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이자 우화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 마녀를 만나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알게 된다. 물론 이 역시 꾸며낸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주문과도 같이, 자신의 마지막을 본 환상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모험을 감행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마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들이 버킷리스트를 적어 놓고 담대한 일상과 소소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과 흡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에게 남은 수명이 수개월이 아닌, 제법 넉넉한 반 백 년의 시간이 허락된다는 점이다.

그는 죽기 전,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 구혼하고 가정을 꾸민다. 세일즈맨으로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하고 동시에 일과 모험을 병행한다. 덕분에 그는 누구보다도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세상의 많은 특별한 이들과 우정을 나눈다. 다만 그가 만난 이들이 특별한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에드워드가 그들과의 만남을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데에 있다.

약속된 운명의 시간, 병으로 죽음이 가까워진 아버지 에드워드는 며느리 조세핀의 조력으로 아들 윌과 화해하게 된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죽음이 임박해 회한과 성찰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그에겐 후회와 반성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는 거짓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 윌은 비로소 다소 과장되고 허풍스러워 보이는 아버지의 거짓말, 그 속에 펼쳐진 삶의 진정한 의미와 만나게 된다.

영화는 참된 욕망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 펼쳐지는 모험과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 특별한 인물들과 나눈 우정의 실체는,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의 면면에서 드러난다. 엔딩 장면이 오열보다 강렬한, 숨죽여 밀려오는 눈물로 범벅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크레디트가 올라가더라도, 여기저기 웅크린 채 퉁퉁 부어 달라붙은 눈을 떼지 못하는, 에드워드의 아이들이 유독 많이 띄는 영화가 바로 ‘빅 피쉬’다.

왜곡된 욕망과 거짓으로 점철된 시대다. 자리를 차지하고 그 위치를 통해 기어이 소유를 실천하려는 이들이 너무도 많아 보인다. 에드워드는 거짓말이라는 역설을 통해, 거짓의 시대에 진정한 존재의 삶이 무엇이며,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란 어떠한지 알려주고 있다. 일찍이 자신의 죽음을 기억(메멘토 모리, Memento mori)하는 법을 깨달은 에드워드의 실천적 삶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욕망이란 무엇인지 비로소 사유하게 된다. 사실 에드워드의 아름다운 거짓말과 진짜 거짓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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