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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카시아에 대한 단상

[칼럼]아카시아에 대한 단상

기사승인 2021. 06. 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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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아카시아 가시에 찔렸다. 코로나 창궐 이후 명절을 거르다 보니 산소를 찾은 지 오래였다. 죄스러운 마음에 들른 뫼 주변엔 아카시아가 우후죽순처럼 올라와 있었다. 서투른 솜씨로 가지와 뿌리를 거둬내는데 기어이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욱신거릴 정도로 뾰족한 끝이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가시를 뽑아내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에 올린 손가락을 보니 크게 부어올라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야 손톱 바로 아래 작고 검은 점을 발견했다. 살 속에 파고든 가시 끝이 남아 독을 뿜고 있는 듯했다. 아내는 바늘을 불로 데워 가시를 파내주었다. 그래도 통증은 꼬박 다음날 하루 일상을 함께 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 마음먹었지만, 어느새 저녁 시간. 응급실을 찾기엔 경미한 일이라 판단했다. 아프고 불편한 가시와의 동거는 하룻밤을 더해야 했다.

한데 가시로 인한 통증은 아카시아에 대한 지식을 더해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는 아카시아가 아니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산지인 아카시아(Shittah tree)와는 다른 북아메리카 지방이 원산지인 아까시나무(학명: Robinia pseudo-acacia)가 바로 유년 시절의 추억을 아련히 채우는 ‘동구 밖 과수원길’의 아카시아라고 한다.

과수원으로 난 길가에 왜 아까시나무가 빼곡히 서 있을까 싶기도 한데, 어렸을 적을 돌아보면 과수원을 하시던 작은 아버지 배밭, 한 귀퉁이엔 벌통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아카시아 꽃향기로 벌을 유인하기 좋아 과일나무꽃 수정에도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벌통을 쳐 아카시아 꿀을 따서 농가수익에 이로움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의 나뭇가지에 예리하게 솟아있는 가시 덕분에 경계를 분명히 할 수 있어서, 동네 아이들의 못 말리는 서리로부터 과수나무를 보호할 수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아까시나무는 1891년에 최초로 일본인이 중국으로부터 인천항을 통해 들여온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관 주도로 한반도의 산하에 아까시나무가 광범위하게 심어졌다고 한다. 당시 벌거벗은 산에 사방공사용으로 적지 않게 도입됐고, 일정 수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현재 아까시나무는 경제 수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다른 수종의 번식을 방해하는 일로 개량해야 할 대상이 됐다.

지난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이 사안이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여기서 판결문을 다시 언급하기에도 부끄럽다. 결정을 내린 이들이 도저히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일본제국주의 시대 조선총독부의 연장선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일제가 한반도에 아까시나무를 도입해 사방공사를 한 사실을 그들의 결정적인 논거인 양 들이밀기도 한다. 천 번을 양보하더라도 마치 그것처럼,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 역시 일본제국주의 역사에 봉사한 숭고한 흔적(?)이라고 여겨야 마땅하단 말인가? 이는 해방 후, 진즉에 역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가시는 박혔을 때 바로 뺐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역사의식에 대한 재고가 시민사회로부터 새롭게 논의되어야 한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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