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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 조은산이 말한다] 코로나 세월

[진인 조은산이 말한다] 코로나 세월

기사승인 2021. 10. 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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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에 태어난 나의 둘째 딸아이는 코로나와의 공생을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믿고 있다. 놀랍게도 녀석은 내가 권하지 않아도 저 스스로 입에 마스크를 채울 줄 안다. 계절의 향기는 KF94 등급의 필터를 거쳐 아이의 코앞에서 소멸했다. 이것은 저주나 다름없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초기, 대중교통이나 다중밀집 시설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를 빌미로 행패를 부리다 입건된 아무개의 뉴스 따윈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출로 버티던 자영업자가 대출이 끊기자 제 목숨을 마저 끊었다는 비보는 더 이상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는다. 순응의 형태는 삶과 죽음에 걸쳐 있다.

진도 앞바다의 굽이치던 물결 앞에 전지전능했던 현 집권 여당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이치던 우한발 입국자들 앞에 무기력했다. 세월호의 6배가 넘는 국민이 코로나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세월호는 인재, 코로나는 천재라는 논리 앞에 희석됐다. 뼛가루를 머금은 바다가 고요히 출렁인다. 한때 정부의 무능력함을 지탄하며 출렁이던 촛불은 서초동의 재림 예수를 마지막으로 더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말한 촛불 정신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신기루이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절대 타오르지 않는 이타적 존재라는 사실이 이제는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는 국가적 불운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천운이었다. 적어도 그는 시위대에 둘러싸인 북악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국가 강제력의 발동 근거가 됐고 군중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은 사전에 차단됐다. 자영업자 김 씨의 녹아내린 삶도, 무주택자 이 씨의 멀어져간 꿈도, 각자의 거처에서만 가열하게 아파했을 뿐 공공의 그 어떤 형상으로도 표출되지 못했다.

거리로 나선다. 마스크 콧대를 눌러 모양새를 다시 잡는다. 코로나19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라면 숨이 조금 답답한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서로 붙잡고 늘어지며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가득하다. 첫째 큰아이도 곧 저들에 합류할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뒷문을 통해 쏟아져 내린다. 그 빈 공간을 이제 내가 차지할 것이다. 옆에 선 승객의 향수가 딥디크인지 조 말론인지 충분히 구별이 가능할 만한 거리에서 오로지 나는 마스크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거센 숨을 내뿜는 그가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휴대폰에는 자영업자들의 집합 금지 조치에 대한 뉴스거리가 이 버스 안의 승객들만큼이나 한가득하다. 코로나의 비극은 이제 희극이 되어가고 있다.

이 시간을 지나오며 깨달은 것들이 있다. 이 작은 한 장의 마스크 하나만으로도 온갖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코로나 덕분에, 나는 환절기 때마다 앓아온 기관지염과 비염에서 해방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낱 일개의 마스크가 집단을 이뤄 거대한 방역 시스템을 완성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진 하나의 표는 어느 곳으로 흘러들어 거대한 정치 작용을 이뤄낼 것인가.

극히 개인적인 사유도 담아본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기 전까진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내음은 바로 내 숨결에 스며 있더라. 이런 사실을 그들 또한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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