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아투 유머펀치] 묘서동처(猫鼠同處)

[아투 유머펀치] 묘서동처(猫鼠同處)

기사승인 2021. 12. 27. 11:0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아투유머펀치
고양이가 잽싸게 쥐를 쫓았다. 잡을 듯 말 듯 숨막히는 추격전 끝에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는데 쥐가 담장 밑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다 잡았던 쥐를 코앞에서 놓친 고양이는 쥐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멍멍! 멍멍멍!” 강아지처럼 짖는 게 아닌가. “고양이 놈이 그새 가버렸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쥐가 구멍 밖으로 살짝 머리를 내밀었다.

고양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쥐는 날랜 고양이 발톱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쥐가 분한 마음을 토로했다. “야! 비겁하게 사기를 치냐?” 그러자 고양이가 여유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먹고살려면 2개 국어 정도는 해야지!” 조선 중기 때 문신 최연(崔演)의 문집에 실린 ‘묘포서설(猫捕鼠說)’은 오만한 쥐의 횡포와 무기력한 고양이의 태만을 질타하는 글로 눈길을 끈다.

“쥐떼가 설쳐대는 바람에 집 안에 성한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 고양이 한 마리를 들여왔다. 그런데 게으른 고양이가 쥐를 잡기는커녕 쥐와 한 패거리가 되어 장난을 일삼으니 쥐의 준동이 더 심해졌을 따름이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날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그 용맹한 쥐 사냥에 열흘 만에 쥐떼가 모습을 감추었다. 명예를 훔쳐 의리를 좀먹고 이익을 탐하여 남을 해치는 인간이 쥐와 다를 게 뭔가. 나아가 이를 엄벌하고 척결해야 할 공인이 또한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싸움박질이나 일삼고 곳간이나 축낸다면 어찌 하겠는가”

그야말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탄식한 글이다. ‘묘서동처’는 글자 그대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이지만, 문제는 도둑을 잡아야 할 고양이가 도둑인 쥐와 한패가 되었다는 것이다. 관리와 감독을 맡은 공인이 부정하고 부패한 자들과 결탁한 상황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다.

해마다 연말이면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특정 짓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전국 대학교수 880명을 상대로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조사를 했더니 ‘묘서동처’가 1위로 꼽혔다. 어느 인문학자의 지적대로 “국익과 공익을 추구하고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사익을 도모하는 일이 속출한 한 해였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암울했던 한 해가 저물었다.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