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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과이어와 본즈 사이에, ‘낀 홈런왕’ 새미 소사를 아시나요

맥과이어와 본즈 사이에, ‘낀 홈런왕’ 새미 소사를 아시나요

기사승인 2022. 01. 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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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소사. /AP 연합
힘찬 레그킥과 강력한 스윙, 베이스를 돌기 전 그 앞에서 종종걸음을 치던 특유의 동작, 홈으로 들어온 후 하늘을 향한 키스 세러머니.

‘코리언특급’ 박찬호(49)가 활약하던 1990년대 후반 야구팬들을 텔레비전(TV) 앞으로 끌어 모으던 매력적인 선수가 있었다. ‘슬래미’ 새미 소사(54)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죽은 메이저리그를 되살려냈던 홈런더비

소사하면 1998년 마크 맥과이어(59)와 벌이던 희대의 홈런왕 경쟁을 빼놓을 수 없다. 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 경쟁은 뜨거웠다. 둘은 나란히 로저 매리스가 가지고 있던 단일시즌 최다 홈런(61개)을 추격하고 따라잡고 훌쩍 뛰어넘으며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렇게 소사는 66개를 치고도 70개를 담장 밖으로 넘긴 맥과이어에게 패해 2인자로 남았다. 2인자였지만 상징적인 소사의 존재가 없었다면 1994년 메이저리그(MLB) 파업 후 침체돼 있던 야구 인기 회복도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1998시즌 이전 3년 연속 최우수선수(MVP) 득표자였던 소사는 그해 홈런왕 타이틀만 맥과이어에게 내줬을 뿐 득점과 타점에서 메이저리그 1위를 차지하며 내셔널리그(NL) MVP에 등극했다. 소속팀 시카고 컵스는 소사에 힘입어 거의 10년 만에 포스트시즌(PS)에 진출했다.

소사는 총 18시즌을 빅리그에서 뛰었고 컵스 소속으로 7번 올스타에 선정됐다. 그는 통산 0.273/0.344/0.534(타율/출루율/장타율) 등을 기록했고 609홈런(역대 9위)을 쳤다. 소사는 야구 역사상 60홈런 이상을 세 시즌이나 작성한 유일의 선수다. 이는 최다 홈런(762개)에 빛나는 배리 본즈(58)도 못한 일이다. 또 2000년 50개, 2002년 49개로 NL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밖에 ‘득점왕 3회, 타점왕 2회, 총루타왕 3회’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2001년 수립한 총루타 425개는 1948년 스탠 뮤지얼 이후 한 시즌 최다였다. 보통 장타력으로 기억되지만 소사는 발도 빨라 도루를 234개나 했다. 한 시즌 30도루 이상이 3번이다. 골드글러브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강한 팔을 가지고 있었고 외야에서 꾸준히 맡은 역할을 해주는 선수였다.

‘찬밥 신세’에 놓인 두 가지 이유

이런 커리어만 놓고 보면 소사가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전미야구기자협회의 표심은 전혀 예상 밖이다. 첫 입성 기회를 얻은 2013년 12.5%는 2021년에도 17%로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도 본즈처럼 금지약물 사용 의혹을 받고 있다. 둘째 부정배트 사용 논란도 피해가지 못할 장애물이다.

소사는 MLB 공식 약물 검사에서 한 번도 적발된 적이 없지만 경기력 향상 약물에 대한 연관성 때문에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금지약물 테스트 무사 통과가 면죄부는 아니다. 소사의 근육질 체격과 이후 홈런 총계는 그가 불법적인 물질을 사용했다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실제 그는 2003년 익명의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몇몇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2003년 불거진 ‘불법’ 코르크 방망이 사용도 치명타를 입혔다. 소사는 2003년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코르크 방망이를 쓰다가 적발됐다. 그는 해당 방망이가 팬 서비스 차원에서 타격 연습 때 사용했던 거라고 주장했지만 믿을 사람은 없었다. 이 일로 소사는 7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야구 시즌에서 1월은 전통적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자들이 주목받는 시기다. 지금은 1990~2000년대를 호령하던 선수들이 대상이다. 본즈와 맥과이어 사이에 낀 소사도 그중 하나다. 역사를 빛낸 훌륭한 선수였지만 명예롭지는 못했다는 낙인이 찍혔다. USA투데이의 칼럼니스트 스티브 가드너는 “취재 시절 경기장에서 가끔 만났을 뿐이지만 소사는 당시 경기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기 있으며 상징적이었던 선수였다”며 “만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과 활기찬 매너의 소유자였다”며 못내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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