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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손흥민은 옷을 못 입는다

[칼럼]손흥민은 옷을 못 입는다

기사승인 2022. 05. 1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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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어그로(aggro)를 끄는 제목인 것 같아 좀 오글거린다. 부정할 수 없다. 제목 장사에 클릭하신 분들껜 심심한 양해의 말씀 올린다. ‘손흥민은 옷을 못 입는다.’ 그의 팀 동료들의 전언이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웃음기 가득한 표정을 하고선 손흥민의 패션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는 표현으로 에두른다. 짓궂은 그들의 농담엔 한편으로 손흥민의 고집스러움이 전달된다. 그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패션을 고수하는 듯싶다.

물론 여기에서 손흥민의 옷차림은 사복을 말한다. 사실 손흥민이 평상복을 입은 모습을 볼 일은 전무하다. 관심이 인식을 지배한다고, 최근 손흥민의 활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다가 얻어걸린 정보들이다. 화기애애한 토트넘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선수들의 인터뷰에선 손흥민이 항상 언급된다. 이미 토트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손흥민을 두고 동료 축구선수들은 그렇게 애정 어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쨌든 궁금증이 더해졌다. 이러저러한 동영상을 뒤져 손흥민의 패션을 찾아보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깨가 좀 과장된 재킷은 분명히 멋을 냈는데 촌티가 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또 예뻐 보였다는 점이다. 그야 당연하게도 손흥민에 대한 팬심이 작동했기 때문이겠다. 손흥민이라는 사람이 너무 좋다 보니, 모든 게 다 좋아 보였고, 그래서 더 좋아 보였다.

손흥민이라는 사람이 왜 좋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그는 겸손하다. 겸손이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 잡지 않은 서구의 가치관에서도 그의 태도는 흥미로운가 보다. 손흥민의 이타적인 플레이에 대한 칭찬은 EPL(영국프리미어리그)을 중계하는 현지 앵커의 입에서 연신 터져 나온다.

그런데 오랫동안 손흥민을 지켜보았지만, 그는 그저 착한 아이만은 아니다. 그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끊임없이 갈망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때론 화낼 줄 알고 싸울 줄도 안다. 플레이 중 동료들의 질책에 같은 수준으로 반발한다. 거친 반칙을 저지른 상대 팀 선수에게 대거리를 할 줄도 안다.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할 줄 알며, 소속팀 감독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불평 어린 표정으로 불만을 표출할 줄도 안다.

최근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손흥민의 활약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차범근 감독과 비교되기도 한다. 차 감독은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출중한 실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볐을 뿐만 아니라 겸손한 태도와 페어플레이로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았었다. 서구인들에겐 전쟁의 참상으로만 기억되는 코리아라는 작은 나라에서 단신으로 독일의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그에게 겸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덕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영원할 것 같았던 차붐의 신화를 딛고 손흥민이 지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자료영상을 보니, 그런 손흥민을 차 감독도 특별히 애정 어리게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손흥민은 자신의 개성과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이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팀의 승리와 승점에 더 큰 가치를 두고 기뻐할 줄 아는 아름다운 청년이다. 여하튼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가치가 일치할 때 그의 상상계는 새로운 상징계의 모범이 된다.

한편 축구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공교롭게도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불법으로 거문도를 점유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렇게 따지면 제국주의의 팽창주의에 피해를 당한 민족의 후손이 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에 건너가 현재 맹활약을 펼치다 못해 득점왕을 넘보는 등 EPL을 평정하고 있는 모양새이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진심을 말하면, 손흥민은 축구화와 유니폼을 입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평소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던 내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 포털에서 누가 어떤 옷을 입었다는 둥 어떤 신발을 신었다는 둥 그런 기사가 넘친다. 왜 그게 포털 메인에 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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