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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정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2023 예산안'에 따르면 '감염병 대응 체계 고도화' 투입 예산은 올해 6조9000억원에서 내년 4조5000억원으로 2조4000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 중장기적인 연구·개발, 인력 양성, 인프라 확충 등에 예산을 신규 편성해 감염병 대응 체계 고도화에 나선다.
이 중 주목할 점은 정부가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38억여원의 예산을 편성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에는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의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대부분 동일 계열 바이러스 질환에 적용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울러 전임상이나 임상1상 완료가 목표라는 점도 공통적으로, 정부를 비롯해 학계와 산업계 등이 총력체제로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지난 3월 코로나·파라믹소·오르토믹소 등 3개 계열 바이러스 질환에 계열별로 적용할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위해 'PAD(Pandemic Antiviral Discovery)' 프로그램을 진행키로 하고, 임상1상 완료를 목표로 1차로 9000만달러를 PAD에 지원했다.
미국립보건원(NIH)은 지난 5월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 촉진을 위해 전임상 완료를 목표로 코로나·파라믹소·부니아·피코나·필로·토가·플라비 등 7개 계열을 타겟으로 각 계열용 먹는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나선 미국 내 연구기관 9곳을 선정, 5억7700만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세계적 연구기관들이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위해 설립한 'READDI'도 코로나·플라비·알파(토가) 등 3개 계열 바이러스에 계열 별로 적용할 범용 치료제 후보물질 5가지를 찾아 5년 안에 임상1상까지 마친다는 목표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민간부문에선 이미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일각에선 미국보다 기술경쟁력에서 앞선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의 이번 예산편성 등으로 민관이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적극 나설 경우 미국에 앞서 파괴력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한층 큰 이유다.
국내에선 현대바이오사이언스(현대바이오)가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것이 제약바이오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현대바이오의 기술력은 약물의 효능을 발휘하는 매커니즘에서 기존 항바이러스제와 다르다는 점에 있다. 항바이러스제는 세포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몸 속 면역체계가 제거할 때까지 증식을 억제하면서 시간을 벌어주는 매커니즘을 갖는다. 특정 바이러스의 복제를 억제하는 바이러스 표적 약물이라는 점에서 독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장기간 투약시에는 바이러스 변이에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기존 항바이러스제의 최장 복용 기간이 5일로 제한되는 주된 이유다.
하지만 현대바이오가 다용도 항생제인 페니실린처럼 다양한 바이러스 감염질환을 치료할 범용 항바이러스제를 목표로 임상중인 CP-COV03의 경우 메커니즘 상으로는 모든 바이러스 질환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항바이러스제와 차별화된다.
CP-COV03는 바이러스의 숙주인 세포를 표적하는 '세포 표적' 항바이러스제다. 약물이 선천면역의 일종인 세포의 오토파지(자가포식)를 촉진해 바이러스 종류나 변이에 관계없이 세포 스스로 제거하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CP-COV03의 주성분인 니클로사마이드는 사스, 메르스 등 코로나 계열은 물론 에이즈, 에볼라, 대상포진, 헤르페스, 간염 등 여러 질환에 항바이러스 효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세포효능실험을 통해 입증돼 있다.
지난 1959년 바이엘이 구충제로 출시한 니클로사마이드는 코로나19 외에도 세포실험 결과 메르스·에볼라·지카 등에 현존 약물 중 가장 뛰어난 항바이러스 효능을 확인했다. 에이즈 세포실험에서도 효능이 입증된 범용성 항바이러스 물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생체이용률이 너무 낮은데다 혈액내 반감기가 짧다는 한계 때문에 구충제에서 항바이러스제로의 약물재창출에 수십년째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바이오는 재작년 원천기술인 약물전달체(DDS) 기반 플랫폼 기술로 니클로사마이드의 생체이용률을 최고 43배까지 끌어올리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하고 CP-COV03를 개발했다. 각종 세포실험 결과를 동물실험과 임상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만 남은 셈으로, 현대바이오는 CP-COV03를 세계 제1호 범용 항바이러스제로 탄생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오상기 대표이사는 지난해 12월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이러스 변이에 관계 없이 효력을 발휘하는 멀티 타켓 약물인 CP-COV03을 코로나19 치료제에 이어 독감 등 다른 바이러스 질환 치료제로 용도를 순차적으로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자신감이 최근 들어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약바이오업계의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이를 위한 행보도 구체적이다. 현대바이오는 지난 7월 코로나19용 먹는 항바이러스제 후보물질(CP-COV03)의 약물이름(브랜드)을 '제프티(Xafty)'로 확정한데 이어 이달 26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인 CP-COV03의 긴급사용승인 신청을 위한 절차를 진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화장품 판매합작법인 비타브리드 재팬 지분 매각으로 140억원 가량의 실탄도 확보했다. 회사 측은 미 FDA에 CP-COV03의 긴급사용승인 신청 절차를 밟는 한편 원숭이두창 치료제로 패스트 트랙을 신청하는 방안도 모색할 계획이다.
이 뿐 아니다. 현대바이오는 현존 약물의 용도를 바꾸거나 확장하는 약물재창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항암제 분야에서도 글로벌 임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항암제 '도세탁셀'의 약물재창출에 나서 이른바 '무고통' 항암제 '폴리탁셀'을 개발, 췌장암용으로 글로벌 임상을 앞두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약물전달체를 탑재한 폴리탁셀은 투약시 정상세포를 손상하지 않고 암세포에만 약효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에서 확인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달 중순 방한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이사장도 우리나라의 바이러스 예방·치료 백신 개발 기술력에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게이츠 이사장의 국회 연설에 앞선 면담에서 "한국에는 예방용 백신을 개발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 외에도 범용 치료제로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는 바이오기업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