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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사돈의 나라’의 민낯

[기자의눈] ‘사돈의 나라’의 민낯

기사승인 2022. 09. 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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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국제부 하노이 특파원
"시부모를 죽을 때까지 모실 것, 정해진 시간에 따라 삼시 세끼를 차릴 것, 베트남어로 말하지 말고 베트남 사람과도 어울리지 말며 아이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지도 말 것"

한국 거주 베트남인들의 송사를 함께 다루는 한 법률사무소가 최근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부인에게 요구했다며 공개한 각서 내용의 일부다. 각서엔 조항들을 잘 지키고 아이가 10살이 되면 부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해주겠단 내용도 포함됐다.

법률사무소가 각서 내용이 '노예계약서' 같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은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동시에 "조회수나 사무소 홍보를 노린 가짜(조작) 게시물이 아니냐"라는 의혹을 샀다. 해당 법률사무소는 기자의 질의에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맞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에선 결혼이주여성을 도구 취급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고발·비판과, 소수의 극단적인 사례로 한베가정을 부정적 이미지로 일반화한다는 지적이 교차하며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은 기자에게 "극소수의 안좋은 사례로 자꾸 한베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버리면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결혼이주여성)에게도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모든 한국 남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모두 일반화해선 안된다"며 되려 한국을 옹호하는 모양새가 펼쳐지고 있다.

'노예계약서'로 베트남이 시끄러운 가운데 한국에선 국가인권위원회가 7일 미혼 한국 남성과 베트남 유학생과의 만남을 지원하겠다는 경북 문경시의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에 대해 성평등 관점에서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주 여성을 인구증가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고, 유학생을 결혼 상대방으로만 상정한 것도 인종적 편견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한베가정과 결혼이주여성의 부정적 측면만 보는 인식을 버리고, 긍정적인 측면과 좋은 사례도 조명해야 한다는 이주여성들의 애타는 지적에도, '사돈의 나라'의 민낯은 수시로 드러나 버린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출산이나 노동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과연 다문화가정과 결혼이주여성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지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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