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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발간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발간

기사승인 2023. 01. 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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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제공=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서울미래유산기록 사업은 2020년 서울 식문화의 상징적 장소인 '낙원떡집'을 시작으로, 도시 제조업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서울의 대장간'을 조사했다.

세 번째 기록 '서울의 이용원'은 한국 최초의 이용원인 개화당 제조소부터 현재의 바버숍까지 이용원 변천사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종로구 혜화동의 '문화이용원'과 마포구 공덕동의 '성우이용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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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이용원은 1895년 단발령을 계기로 지금의 이용원을 뜻하는 '개화당開化黨 제조소'가 탄생했다. 한국인 최초의 이용원인 '동흥이발소'는 1901년 유양호가 인사동 조선극장 터에 개업했다. 황제 전속 이용사였던 안종호는 광화문 근처에 '태성이발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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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서울 중구의 맘보이발관 /제공=서울역사박물관
서울(경성)에는 일본인 이용원이 가장 먼저 생겼다. 1915년 서울의 이용원은 226개였는데, 조선인 이용원이 140곳(62%)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인 이용원이 70곳(31%), 중국인 이용원이 15~16곳(7%)으로 가장 적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이용원'과 '성우이용원'은 100여 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이 곳은 시민 가까이에서 소통하며 전통 방식의 이용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문화이용원은 1940년대 처음 문을 열었다. 6.25전쟁 중 창업자가 실종돼 전후 이상기 이용사가 들어와 1954년 현 위치(종로구 혜화로 7)에 이전했다. 손님이었던 지덕용 이용사는 17세에 보조원으로 문화이용원과 인연을 맺었다. 1969년 이용원을 인수한 그는 2022년까지 문화이용원에서 67년의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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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용원 내부 /제공=서울역사박물관
성우이용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용원이다. 1928년 현 위치(마포구 효창원로97길 4-1)에 우리나라 이용 면허 제2호 서재덕이 개업했다. 1935년 사위 이성순이 대를 이었고, 1971년부터 아들 이남열이 3대째 운영 중이다.

성우이용원에서 사용하는 도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50년 된 독일제 면도칼이다. 이남열 이용사가 가장 아끼는 가위는 1968년 이발을 시작하며 당시 일주일 치 임금이던 700원에 구입한 것이다.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열람할 수 있다. 구입은 서울책방 또는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 샵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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