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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27> 몽환적 번안가요 ‘꿈속의 사랑’

[대중가요의 아리랑] <27> 몽환적 번안가요 ‘꿈속의 사랑’

기사승인 2023. 02. 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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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한 죄이라서/ 소리없이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아~ 사랑 애달픈 내 사랑아/ 어이 맺은 하룻밤의 꿈/ 다시 못 볼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말 것을/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꿈속의 사랑'은 번안곡이다. 원곡은 '몽중인(夢中人)'으로 1942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상영되었던 영화 '장미꽃은 곳곳에 피건만(薔薇處處開)'의 삽입곡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약혼녀가 있는 남자를 좋아한 여인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과 시름을 이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 공추하가 처음 불렀다. 노래의 원형은 상해에 전하는 구전민요라는 얘기도 있다.

중화권에서는 꽤 알려진 노래로 10개 이상의 버전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만(臺灣)의 국민 가수 채금(蔡琴)이 부른 곡이 가장 유명하다. 이 중국 가요에 손석우가 가사를 붙이고 편곡을 한 것을 해방 후 현인이 불러 크게 유행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후반 상하이에 머물렀던 현인에게 '夢中人'은 이미 귀에 익은 곡이었을 수도 있다. 원곡 '꿈속의 사람(夢中人)'은 번안곡 '꿈속의 사랑'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달빛 저리 몽롱하고 대지에 밤안개 자욱한데 꿈속의 님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바닷물결 소리 아득히 들려오고 솔바람 구슬피 우는데 꿈속의 님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장미없는 봄날은 줄 끊어진 하프같고 그대없이 살아가는 것은 하루가 일년 같아라 밤꾀꼬리 숲에서 슬피 울고 풀잎에 눈물방울 맺히는데 꿈속의 님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가사는 물론 곡조도 훨씬 애절하고 몽환적이다. 채금은 '夢中人'의 서정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서 표현했다. 그래서 남성 가수인 현인이 부른 '꿈속의 사랑'과는 다소의 이질감이 없지 않다. 번안곡의 한계일 것이다.

1920년대 유성기 음반을 통해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유행가 '이 풍진 세상'(희망가)도 번안가였다. 미국의 흑인 영가였던 원곡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들어온 것이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도 번안곡이다. 원곡은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다. 1930년대 '황성의 적'(황성옛터)을 불렀던 막간 가수이자 배우 이애리수와 전설적인 무용수였던 최승희도 서양음악을 번안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꿈속의 사랑'은 해방 후 최초의 번안가요이다.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음악활동을 한 개방적인 사고와 모던한 분위기의 현인이 월드 뮤직 전령사 역할을 한 것이다. 스페인어 노래 '베사메무초'를 국내에 처음 소개해 트로트 일변도의 대중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가수였다. 우리 국민의 오랜 애창곡인 '꿈속의 사랑'은 현인 이후에도 숱한 유명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불렀다.

'꿈속의 사람(夢中人)'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애달픈 자신의 현실을 자연에 투영하며 감성을 극대화했다. 번안곡 '꿈속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에 더 초점을 맞췄다. 두 곡 모두 이루어질 수 없어서 더 아름답다. 사랑의 역설이다. 성공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함께하지 못한 사랑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사랑했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청마 유치환의 시를 떠올려본다. 실연의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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