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특별기고] 尹대통령의 지도자 다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선도

[특별기고] 尹대통령의 지도자 다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선도

기사승인 2023. 03. 07. 18:49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박영환 KBS 전 앵커·광주총국장

 ◇ '토착왜구'로 비난받을 만한 연설은 누가?

한·일 관계를 깊은 안목으로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일본과의 교류 필요성을 역설한 다음의 연설은 도대체 누가 한 것일까? 

"일본은 세계 중심 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독자적 근대화에 성공했고 서구의 문물을 수용하여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와 전쟁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일본 국민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국민에게 큰 희생과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달라졌습니다. 일본 국민은 땀과 눈물을 바쳐 의회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은 아시아 각국의 국민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의 길을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중략)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참으로 길고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양국은 1500년 이상이나 되는 교류를 해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반도로부터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두 나라는 우랄 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쓰고 있으며, 불교와 유교 문화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300년의 쇄국시대 당시에도 일본은 한국과 많은 왕래를 했습니다. 


그에 비해 역사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약 4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금세기 초 식민 지배 35년간입니다. 이렇게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이는 그 장구한 교류의 역사를 만들어 온 두 나라의 선조들에게, 그리고 장래 후손들에게 부끄럽고 지탄받을 일이지 않겠습니까?"


이는 요즘 분위기로는 이른바 '토착왜구'로 비난받을 만한 내용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는 놀랍게도 민주당 계열로는 처음 수평적 정권교체로 등장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가을 일본 의회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다.


◇ DJ의 햇볕정책과 불법적인 대북송금은 문제였지만, 오부치와의 정상회담은 훌륭한 결단

필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 기자였다. 그는 여느 대통령처럼 집권 5년 동안 공과가 있었고 사람마다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햇볕정책과 불법적인 대북 송금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고도화를 자초하고 불러왔다는 비판이 높다. 그렇지만 두 번째 국빈 방문 대상국으로 일본을 택하고 일본 의회 연설을 통해 대중문화 개방을 선제적으로 선언한 건 지도자로서 철학과 탁월함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DJ 집권 초기 한·일 관계는 참으로 험악했다. 전임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에게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식의 거친 발언을 하자 일본은 독도 공해상에서 의도적으로 무력시위를 벌였고 급기야 어업협정을 파기해 버렸다. 이런 분위기 탓에 당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우려하고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80%를 넘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지지도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정무적인 이유로 DJ를 극구 말렸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중문화 개방을 외롭게 결단했고 한류의 일본 수출이라는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뒀다.


김대중은 한발 더 나갔다. 오부치 전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식민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이전의 '무라야마 총리 담화'보다 진전된 내용이다. 무라야마 담화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라고만 표현했으나 오부치는 '한국'을 최초로 직접 언급했다. 또한 무라야마 전 총리는 사회당 출신의 비주류지만 오부치는 보수 본류인 자민당 정권 총리다. 일본 주류의 직접 사죄는 엄청난 외교적 성과였다.


미래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혜안과 당리당략보다 국익을 앞세운 김대중의 행보는 1964년에도 있었다. 야당의 촉망받는 의원이던 그는 학생들과 시민, 야당이 격렬하게 반대했던 한·일 간 국교정상화에 찬성했다. 맞아 죽는 걸 감수할 만큼 용기가 없었다면 당론에 맞서고 반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DJ는 군사정부 앞잡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자녀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외교 철학이 분명했기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재임 시절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박승 씨는 김대중은 국가 간의 관계는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면 안 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가 한국발전에 도움이 되고 한·미 관계 등 한국의 대외관계에 발전에 필요하다는 확고한 견해를 가졌다고 회고한 바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선도, '망원경을 꺼내' 미래 살핀 결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언론 보도로는 이달 하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양자 회담을 여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반일정서가 상당한 국면에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연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DJ의 결단은 유용한 연구 자료이자 판단의 근거가 될 듯하다.


한·일 간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자 피해 배상과 위안부 문제 등 언제든 화산처럼 폭발할 수 있는 갈등 요소가 산적해 있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권 내내 이 문제는 제대로 된 해결 노력이 없었다. 지나치게 국민의 감정만 살피고 눈치를 봤다. 오히려 한·일 두 나라는 갈등 사안을 각자 국내 정치 영역에 핵심 이슈로 끌어들여 상황을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사이 양국 국민 사이에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안이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될 사항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 이상 방치는 안 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누군가 먼저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아래는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라를 유지하려면 군주는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없으며, 종종 신의와 반대로, 자비로움과 반대로, 인간애와 반대로, 경건함과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기만이 당연한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할 일'보다 도덕적으로 '해야 할 일'을 지향하는 사람은 파멸하기 마련이므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군주라면 누구나 착하게 굴지 않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국익을 지켜야 하는 국가지도자는 특히 외교정책을 추진할 때 일반 국민의 평균적인 감정과 판단, 여론, 비난까지 뛰어넘는 용기와 결기를 지녀야만 한다. 대중들이 현미경을 눈에 대고 미시적으로 생각할 때 지도자는 망원경을 꺼내 거시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웃 일본과 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거나 찬성하면 무조건 '토착왜구'라고 낙인찍고 공격하는 시대다. 이는 반대 진영에서 쓰는 '빨갱이'라는 표현처럼 한심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사람을 적과 동지로 구별하는 진영사회의 악폐가 국익의 최전선인 외교까지 오염시키면 안 된다.


이와 관련해 반일이 언제부터 정치적인 구호와 투쟁수단으로 변질되고 악용됐는지 따져보자. 어떤 이들은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운동권 세력이 국회와 시민단체에 진출했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며 반일에 투신한 분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일이 이념화되고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오해는 풀리지 않고 있다.  


◇ 선진국 진입한 이제는 당당하게 '비합리적인 민족주의 동굴'에서 빠져나와야

대한민국은 식민지에서 벗어나 나라를 세우고 세계 7위의 경제적 기적과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나라다. K팝의 글로벌화가 보여주듯 또한 문화수출 강국이다. 일본에 꿀릴 게 전혀 없다. 이제는 일본에 대해서도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우리나라를 계속 일본의 하위변수 또는 종속변수로 묶어 놓고 과도한 피해 의식에 빠져있을 것인가? 이제 한국이 먼저 비합리적인 민족주의 동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면 일본도 부끄러워하며 화답하지 않겠는가. 한국인들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집중하고 일본인들은 과거에 집중하고 과거를 직시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쌍방의 노력과 별개로 이제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쥐고 당당하게 한·일 관계를 설계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열어나갈 의지를 천명하고, 6일에는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를 매듭지을 방안을 발표한 것을 필자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정부의 방안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이 배상책임을 인정한 일본 피고기업들은 배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받은 포스코 등 한국기업이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금을 지급해 주는 제3자 변제방안이다. 고심 끝에 나왔을 정부의 방안에 대해 야당은 굴종외교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합리적인 민족주의의 동굴'에서 우리 민족을 끌어내는 지도자다운 훌륭한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