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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환 칼럼] 산과 들에 피어있는 봄 풀꽃을 보면서

[오응환 칼럼] 산과 들에 피어있는 봄 풀꽃을 보면서

기사승인 2023. 03. 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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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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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환 객원논설위원
'멸종 위기 '조름나물' 군락지 태백서 발견'이라는 제하의 모 신문기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우선 멸종을 면했으므로 즐거워할 만하지만, 그 이름이 왜 하필 '조름나물'인가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조름나물'이란 '먹으면 졸리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매년 이즈음부터 들녘에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 꽃의 이름은 '애기똥풀'이다. 꽃줄기를 잘라 보면 샛노란 즙이 우러나는데, 그게 꼭 갓난아기 똥처럼 보인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이름이 이상하거나 재미있다. 이런 유형의 이름을 가진 식물은 사실 적지 않다. '개불알꽃' '쥐똥나무' '노루오줌'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식물들이 우리 산하에서 자라고 있다.

'개쉽싸리(Lycopus ramosissimus)'라는 이름의 식물. '개쉽싸리'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쉽싸리'라는 풀을 닮았다 하여 앞에 '개'를 붙인 것이다. '쉽싸리'는 '아주 쉽게'란 뜻의 '쉽사리'가 된소리로 바뀐 것일 따름이므로 이상한 상상은 금물이며, 비슷한 종류로 '애기쉽싸리' '털쉽싸리'도 있다. '꽝꽝나무' '구린내나무' '때죽나무'도 있다. 예컨대 꽝꽝나무(Box-Leaved Holly)는 그 두꺼운 잎을 태울 때 '꽝꽝' 하는 소리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들의 이름은 대체 누가 지었을까? 이 물음에 식물학자 박만규(1906~1977년)가 대답해준다. "꽃은 처음 본 사람이 그 느낌으로 무어라 불러주면 그것이 곧 그 꽃의 이름이 된다. 제비처럼 날렵하니 제비꽃, 씹어보아 쓰다고 씀바귀, 물가에서 자란다고 물쑥. 이 모두가 우리네 조상들이 지어서 불러내려온 이름들이다. 웃음이 나오는 엉큼한 이름도 많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을 개불알꽃이라고 이름 지어 놓았다. 더덕의 한 종류인 소경불알도 점잖지 않은 이름이다. 욕하듯이 불러야 하는 이름이 식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조개의 본디 이름은 말씹조개였다. 이 조개의 이름은 경성고등학교 생물 교과서를 만들면서 지금의 말조개로 고쳐 실었다."

부분적으로 뒷날 고쳐진 이름도 있으나, 이런 식물들의 이름은 수명이 길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최재천 생태학자가 말했듯 '애기똥풀'이 좀 그렇다 하여 '유아변초'쯤으로 부르면 갑자기 뭐가 좀 있어 보이나?

군부 출신 통치자 시절의 '정의 사회 구현'과 '보통 사람들'이란 어구는 의미가 좋아 수명이 길 만한데 정권이 바뀌자 금방 사라졌다. 다음 정권에서 활용한 '통섭'도 좋고 '신지식인'도 그럴 듯했으나 역시 수명이 길지 못했다. '콘텐츠'나 '포커스'라는 말엔 이미 구태의 느낌이 든다. 요즘 '퓨전'이나 '융합'이 유행이지만 이것도 시들해질 날이 곧 올 것이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의 수명이 짧아지는 이 시대에 '애기똥풀'은 상대적으로 오래됐지만 신선한 느낌을 준다는 얘기다.

반면 빨리 없어져 마땅한 잘못된 말버릇이 있다. 엉터리 존대법이 그것이다. 대형 매장에 가 보자.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으면 "그거 10만원이세요". "패션 코너가 어디 있죠?" 하면 "손님, 저쪽에 있으세요" 한다. 사물에 존칭을 가하는 이 명백히 틀린 어법을 매장 직원들이 존대한답시고 남발하는 중이다. 지난 총선 때 승패를 좌우한 한 후보자의 막말과 욕설에 이르러선 그저 놀랍고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말은 인간 정신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처럼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다. 그럼에도 요즘 일부 정치인들의 막말은 지나치게 저급하고, 또 오직 정쟁적이라 아무리 타당한 논리일지라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시정잡배의 말을 방불케 하는 경우가 허다한 정치 언어 현실에서 우리말 풀이름 '애기똥풀'이나 '며느리밑씻개'는 차라리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봄 풀꽃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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