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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소외] ②사회적 약자 향한 ‘법률구조’…전문가 해법은

[소송 소외] ②사회적 약자 향한 ‘법률구조’…전문가 해법은

기사승인 2023. 08. 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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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소외' 원인은 '교육 부재'…"법학 배울 기회 사라져"
법률구조 제도 개선 목소리도…"종합 구조기구 만들어야"
"고발인 이의신청권 되살리고 소송구조 비용 현실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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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 나온 대사다. 하지만 이 말은 대다수의 평범한 이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드라마 속 재벌들과 달리 대다수 국민들은 초호화 변호사 군단을 꾸려 소송에 대응할 여유도 '법 기술'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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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는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와 함께 '2023 법 인식 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 소송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법률구조에 대한 인식부족, 공정한 법률구조에 대한 불신 등 '소송 소외'의 다양한 양상을 학인했다. 특히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서 '소송 포비아' 현상마저 확인할 수 있었다. 법학·법조계 인사들은 교육의 부재(不在)가 이같은 '소송 소외' 현상의 시작임을 지적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구조를 두텁게 할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 "학교서부터 '전세사기 안 당하는 법' 가르쳐야"
'소송 소외' 현상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우선 법 교육을 지목했다. '법학'을 꼭 배워야 할 기초지식으로 분류해 가르치지 않고 정치 혹은 사회의 일부분으로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정치와 법'은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으로 수험생들 사이에 비추천 과목으로 전락했다.

전학선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어릴 때부터 법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교과과정에 법은 정치나 사회의 한 파트로 축소돼있다. 법학 대학이 사라지면서 대학에 와서도 법을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줄었다"며 "대한민국은 '법대로 하자'는 말이 '다시는 보지 말자' 내지는 '끝까지 가보자'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국민정서상 소송을 필요악으로 여겨 한번 시작하면 패가망신할 정도로 돈과 시간이 낭비된다는 것이 소송에 대한 전반적 인식인 듯하다"고 전했다.

박상수 법조윤리협의회 사무총장(변호사)은 "우리 사회 대부분의 이슈가 법과 관련된 것임에도 법적 지식과 사고능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부당함을 법원이 아닌 사주카페에 호소하는 웃지 못할 광경도 보게 된다"며 "학교에서 15세기 중세국어나 관동별곡보다 전세사기 당하지 않는 법, 연봉을 12개월 아닌 13개월 치로 쪼개서 주면 불법인 이유를 가르치는 것이 더 쓸모 있지 않겠느냐. 사회에 나와 자기 재산과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기본적인 계약 지식, 법 지식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벤츠 타고 법률구조 받겠다는 일 없어야"
소송 대응에 취약한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법률구조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가를 통한 법률구조는 크게 법률구조법에 의해 설치된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하거나 법원을 통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재판에 필요한 비용(인지대, 변호사 보수, 송달료 등)을 면제받는 것으로 나뉜다.

법률구조공단의 경우 무료 법률상담, 소송대리 등 각종 법률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지만 형사사건, 국가소송, 헌법 소송 등에는 제약이 뒤따른다. 또 지원 대상을 중위소득 125%까지 잡고 있어 사회적 약자를 넘어 일부 중산층을 포함해 꼭 필요한 이들에게 혜택이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소송 소외’해법에 대한 전문가 말.말.말.
'소송 소외' 해법에 대한 전문가 말.말.말./그래픽=이주영 디자이너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헌 변호사는 "그동안 법률구조가 포퓰리즘에 물들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기준을 강화해 사회적 약자를 더욱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벤츠 타고 다니면서 법률구조 받겠다는 일이 계속 있어선 안 된다"며 "대한법률구조공단, 마을변호사, 사이버법률상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여러 군데로 흩어진 법률구조 기관을 합쳐 '종합 법률구조기구'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법 공약이 현실화하게 되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인 차성안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독일의 사법시스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차 교수는 "우리와 달리 독일은 사회보장소송만을 전담하는 사회법원이 별도로 존재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소송 접근성을 높이고 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 주거비용, 실업 등 실질적인 위협들에 대해 광범위한 소송구조 활동이 이뤄진다"며 "독일 법원은 소송비용 면제나 소장의 형식성 완화, 비변호사를 포함한 단체에 의한 소송대리, 직권탐지주의 등으로 국민들에게 소송도 하나의 권리이자 서비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 "소송구조 비용 16년째 제자리…'한국형 프로보노' 고민 시작해야"
사회적 약자 법률구조에 있어 또 하나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것이 '고발인 이의신청권'을 폐지한 2022년 개정 형사소송법, 이른바 '검수완박법'이다. 지난해 법 시행 이후 고발인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없게 됐고, 장애인, 아동처럼 직접 고소하기 어려운 경우나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공익 사건 피해 구제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변호사)는 "스스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학대나 착취를 당하면,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권익기관이 사건을 조사한 뒤 범죄 피해가 확인되면 가해자를 대신 고발한다. 사회적 약자 보호나 사회적 강자 감시에 시민단체 고발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며 "검수완박법 시행으로 고발인만 있는 사건은 경찰이 종결하면 그걸로 끝난다. 이후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게 됐고, 범죄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해소할 길이 막혔다. 반드시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변호사의 소송구조 활동 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소송구조 변호사의 기본보수액은 2007년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오른 후 16년째 그대로다. 법률구조공단에서 6년간 활동한 최정규 변호사는 "변호사들에게 사명감만 강조할 수는 없다. 사회에서 법률구조를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생각하는데, 의료 소송 등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획일적으로 100만원을 지급하면 제대로 된 변호사를 만나기 힘들다. 변호사 보수 기준액을 최소 300만원으로 하는 등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끝으로 홍완식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형 프로보노(Pro Bono·전문가들의 공익 활동) 모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변호사들은 매년 일정 시간 공익 활동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형식적 운영에 그치는 측면이 있다. 국내 대형 로펌에서도 다들 공익활동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지만 한 해 얼마의 비용을 들여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지 구체적인 수치가 나와있지 않다"며 "미국은 각주 변호사협회 차원에서 개별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평가하고 로펌의 공익활동이 주요한 지표로 쓰인다. 프로보노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민간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변호사들에 대한 신뢰 회복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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