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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54> 출근길 로망스 ‘대머리 총각’

[대중가요의 아리랑] <54> 출근길 로망스 ‘대머리 총각’

기사승인 2023. 09. 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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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여덟시 통근길에 대머리 총각/ 오늘도 만나려나 떨리는 마음/ 시원한 대머리에 나이가 들어/ 행여나 장가갔나 근심하였죠/ 여덟시 통근길에 대머리 총각/ 내일도 만나려나 기다려지네// 무심코 그를 따라 타고 본 전차/ 오가는 눈총 속에 싹트는 사랑/ 빨갛게 젖은 얼굴 부끄러움에/ 처녀 맘 아는 듯이 답하는 미소/ 여덟시 통근길에 대머리 총각/ 내일도 만나려나 기다려지네'

'대머리 총각'은 설레는 출근길 로망스다. 1960년대 중반 통근길에 마주치는 청춘남녀의 순정한 연애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노래다. '대머리'라는 신체적 특성을 노래의 소재로 삼은 가요의 첫 등장이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개인 신상에 대한 폄하의 의미가 강했던 '대머리'라는 용어를 쓴 것 자체도 뜻밖이었다. 게다가 도시 여성이 대머리 총각에 대해 연정을 표출하는 것 또한 파격적이었다.

'대머리'는 공짜를 밝힌다는 조롱성 농담의 대상이었다. 당시 처녀들로서도 연애나 결혼상대로는 결코 매력 있는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이야 대머리가 오히려 자신만의 멋과 개성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경우가 많다. 특히 연예계와 스포츠계에는 대머리 스타들이 흔하다. 대머리가 포용성과 낙천성 또는 열정적인 성격의 이미지로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60년 전의 시대는 달랐다.

아무튼 이 노래는 대머리 총각을 연모하는 처녀를 내세우는 해학적 반전과 노랫말의 희극성이 묘미를 더하면서 일약 히트곡으로 떠올랐다. 멋진 주인공이 아닌 어쩌면 외모 콤플렉스를 지닌 도회지 소시민의 일상과 연정을 다루면서 노래의 공감대가 더 확산되었는지도 모른다. '대머리 총각'의 경쾌한 리듬 또한 산업화를 통한 국가 재건이 최우선 과제였던 박진감 있는 시대상의 반영이었다.

가요 '대머리 총각'과 함께 인텔리 가수 김상희의 등장 또한 장안의 화제였다. 우선 고려대 법대 재학 중에 데뷔한 김상희는 '여성 학사가수 1호'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원조라고 하는 뱅 헤어(끝이 말린 단발머리) 스타일에 미니스커트 등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을 소화하며 가요계의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따로 있었다.

늘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순간적인 관능미가 아닌 한결같이 절제된 모습과 정제된 성음이 '만인의 연인 김상희'의 오랜 인기 비결이라는 게 가요계의 분석이다. '대머리 총각'으로 스타덤에 오른 김상희는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울산 큰애기' '경상도 청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1960~1970년대를 풍미하는 국민가수로 대중의 사랑을 누렸다. 그리고 나이 칠십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외모와 목소리를 지녔다.

인기가요 '대머리 총각'은 북한에까지 전파된 노래였다. 1968년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북한 무장 게릴라 김신조와 그해 겨울 자수한 무장공비 조응택도 기자회견장에서 이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북한에서 남몰래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배웠다는 것이었다. 1968년엔 심우섭 감독이 동명의 코믹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 현철·김연자·이영화 등 수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해 불렀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전차는 드라마 '야인시대'의 김두한이나 임화수라도 나타날 듯한 당시 서울의 중요한 출퇴근 교통수단이었다. 그 전차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노랫말 속 대머리 총각의 늙수그레한 모습도 흑백영상의 잔영으로 남았다. 김상희의 청아한 목소리만 코스모스 피어있던 옛 가을길의 향기처럼 귓전을 맴돌 뿐이다.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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