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전문의이자 유전학 교수인 에릭 토폴은 자신의 저서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The Patient Will See You Now)’에서 환자가 자신의 의료 관련 정보와 서비스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측하며 ‘의료의 민주화’란 화두를 던졌다.
지금은 환자가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에릭 토폴이 그려낸 미래 사회에서는 환자의 자율성이 강화되며 의사 의존형 의료체제는 약화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의사는 환자의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환자의 문제 자체에 시간을 더 쓸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인공지능(AI)과 융합한 임상 데이터 및 유전체 정보 등이 의료체제를 환자 중심의 상향 서비스로 변화시켜 나갈 것으로 저자는 내다봤다.
일반 대중이 듣기에 아직은 요원한 미래 이야기만 같다. 그러나 의료 민주화, 유전체 정보,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디지털 헬스케어 등의 키워드를 일상 대화 속에서 매일같이 주고받으며 에릭 토폴이 예견한 미래를 한 걸음 더 앞당기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모인 기업이 있다.
바로 아시아인 유전체 연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제노플랜(Genoplan Inc.)이다. 대한민국 국적의 강병규 총괄대표가 지난 2014년 창업한 글로벌 유전체 분석 기업으로 ‘유전 정보의 민주화’를 미션으로 내걸고 있다. 본사는 미국에 있으며 한국(서울)과 일본(도쿄, 후쿠오카), 싱가포르에 각각의 법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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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제노플랜 글로벌 최고과학책임자(CSO) 겸 연구소장<사진=제노플랜> |
흥미로우면서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의료의 민주화’와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유전체 정보 활용에 관한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기 위해 제노플랜의 연구조직을 총괄하고 있는 이병철 글로벌 최고과학책임자(CSO, Chief Science Officer) 겸 연구소장을 만났다.
이병철 제노플랜 CSO는 고려대학교에서 생명과학과 컴퓨터과학을 복수 전공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해 바이오및뇌공학 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생물정보학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IBM코리아, SK텔레콤 등을 거쳐 유전체 분석 기업인 마크로젠과 쓰리빌리언,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인바이츠헬스케어 등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다. 제노플랜에는 지난 2021년 합류했다.
- 제노플랜의 글로벌 CSO란 직책이 생소한데 그 역할과 책임에 대해 소개한다면?
유전체 분석 기업의 경쟁력은 유전체 데이터의 ‘해석’ 역량에 의해 좌우되는데, 제노플랜의 유전체 데이터 해석 숙련도 및 정교함은 세계 정상급 수준으로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제노플랜의 이러한 기술 경쟁력과 연구 성과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재를 육성하고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지휘자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실무적으로는 서울과 일본 연구소에 구비된 연구 인력과 첨단 장비를 총괄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연구소의 인력은 이노베이션팀, 임상병리학(CLS)팀, 데이터분석(DA)팀, 인공지능(AI)팀 등 총 4개의 팀으로 조직되어 있는데, 이처럼 조직을 세분화해 운영하는 전략적 기획과 각각의 팀이 마치 생물의 기관이 서로 연결되어 기능하는 것처럼 서로가 항시 긴밀하고 원활하게 협업해 나가도록 관리자로서 조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제노플랜의 미션인 ‘유전 정보의 민주화’가 ‘의료의 민주화’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궁금하다.
의료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유전 정보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전체 정보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사용될 뿐 아니라 발병을 미리 예측하는 의과학적 데이터로도 활용될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현재 및 미래의 질환에 대한 정보를 미리 확보하고 관련 예방법에 대한 적합한 솔루션을 보건소나 기존의 의료 시스템을 통해 즉각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면 의료의 민주화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 중 질병 관련 해석 정보를 원할 때 언제든지 의뢰, 확인, 보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설령 제도가 마련됐다 해도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전 정보를 활용한 건강관리 및 의료의 민주화는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기술이 더 발달해 법적 허용이 이뤄지고 비용도 절감된다면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이다. 제노플랜과 같은 유전체 분석 기업을 자동차 회사에 빗대어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현대차나 BMW 등의 제조사를 신뢰하고 운전대를 잡듯이, 제노플랜이 제공한 유전 정보의 해석을 고객이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즉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통해 유전 정보의 민주화와 의료의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완벽히 일치하는 비유는 아니지만 자동차도 처음에는 누구나 운전할 수 없었다가 오늘날에 이르렀듯이 유전체 정보도 결국에는 신뢰할 수 있는 유전체 분석 기업을 믿고 대중이 누구나 활용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 제노플랜이 다른 유전체 분석 기업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면?
제노플랜의 설립 과정을 살펴보면 상업성에 기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장비 마련 등을 위한 투자 유치가 사업적 비전을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의과학을 전공한 창업주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미래 건강 관리에 공헌하고자 지난 10년간 아시아인 고유의 유전체 데이터 수집에 매진해온 것을 잘 알고 있다. 제노플랜 연구소는 축적된 데이터와 고객의 유전체 데이터 해석에 초점을 맞춘 기술력을 쌓아왔다. 이러한 지난 여정의 진정성과 연구 성과물의 가치는 분명 언젠가 인류사에 중대하게 기여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큰 규모의 자본이 고가의 장비를 일시에 세팅하여 규제가 수반되는 해석 연구보다는 유전체 데이터 추출에 치중하며 제약회사 등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 실현에 더 주안점을 둔 것과는 대비된다. 제노플랜싱가포르가 추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 대상 클라우드 유전체 해석 서비스인 ‘제노플랜X’ 역시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데 서비스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하여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과 계약을 맺고 유전체 연구에서 소외된 동남아 지역에서도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일본에서 최근 선보인 반려동물 유전체 분석 서비스도 제노플랜이 개척, 선도하는 새로운 영역이다. 매월 의뢰 기록을 갱신해 나가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에서도 시장 상황이 허용이 된다면 의뢰를 희망하는 고객이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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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제노플랜 CSO가 실험 결과에 대해 연구원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사진=제노플랜> |
-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궁금하다.
제노플랜의 CSO이자 연구소의 일원으로서 제노플랜에 주어지는 사회적, 시대적 과제에 집중하며 유전학을 중심으로 한 의과학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정진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강병규 총괄대표와 함께 그리는 꿈 중 한마음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데, 바로 후성유전체 연구다. 후성유전체에 관한 연구는 제노플랜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영위하고 거듭해서 진화하는 기업으로서 생존해 나가는 데 중대한 자산이 될 것으로 믿는다. 휴성유전체란 쉽게 말해 개개인의 삶이 반영된 현재 내 유전체의 상태를 말한다. 이 후생유전체에 대한 해석과 본인이 원래 가지고 태어난 유전적 경향에 대한 정보의 해석이 더해지게 된다면 질병에 대한 예측을 넘어 조기 진단까지 할 수 있으며, 노화 억제를 넘어 역노화와 같은 인류의 오랜 염원까지 실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연구 분야라고 생각한다. 꼭 실현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