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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기틀 다진 꼿꼿한 큰스님’ 녹원스님 추모집 출간

‘동국대 기틀 다진 꼿꼿한 큰스님’ 녹원스님 추모집 출간

기사승인 2023. 09. 1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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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동국대 이사장 지낸 녹원스님 추모집
'엄했지만 원력 컸던 스님'...법등스님 등 제자들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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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및 동국대 이사장을 지낸 영허 녹원스님의 추모집 출간 기념촬영 모습.(왼쪽부터 주호영 국회의원,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스님, 직지사 주지 장명스님,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스님)/사진=황의중
동국대 일산·경주병원 건립 등으로 학교 발전의 기틀을 다진 영허당 녹원스님을 추모하는 책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이 나와 눈길을 끈다.

직지사 주지이자 조계종 전 총무원장을 지낸 녹원스님은 1990년부터 2002년까지 장기간 동국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오늘날의 동국대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스님들에겐 엄격한 수행자로 기억되는 반면 불자들에게 자비로운 큰스님으로 기억된다.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스님, 직지사 주지 장명스님,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묘장스님 등 직지사 문도들과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11일 서울 중구 조계사에서 녹원스님과의 추억을 털어놓았다.

법등스님은 엄격한 수행자였던 스승 녹원스님의 일화를 떠올렸다. "60년대 당시 열차로 서울까지 올라오는 데 7시간 걸리는 데 스님은 기차에 올라타시면 두루마기를 벗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만히 앉아서 오셨다"며 "어린 저는 허리가 뒤틀려도 스님이 안 그러시니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법등스님은 "녹원스님께선 불사를 할 때마다 '30년 후에 누가 시비를 걸더라도 책잡히지 않게 해라. 명분을 확실히 해라'라고 말씀하셨다"며 "그때 배웠던 엄격함이 나중에 종단 일을 볼 때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법등스님은 동국대병원 건립에 대한 녹원스님의 원력을 소개하며 비화도 전했다. 녹원스님이 학교 이사장 시절에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을 인수하려 했으나 당시 전두환 정부에서 경기대 총장을 동국대 총장을 시키라는 조건을 종단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다는 것이다. 이는 녹원스님이 가장 아쉬워했던 일이었다고 법등스님은 회상했다.

장명스님은 녹원스님이 엄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지만 7∼8년 정도 모셨을 때 처음으로 속세의 이력을 물어보더니 "장명이 덕분에 편안하게 잘 쉬었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며 "평생 어떤 사람들에게 받았던 칭찬보다 나았다"며 옛일을 떠올렸다.

국회 불자 모임인 정각회 회장 주호영 의원은 1990년대 초반 대구지법 김천지원 판사로 일하던 때 녹원스님이 머물던 직지사를 여러 차례 찾아가곤 했는데 스님이 "남북문제라든지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다"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씀을 들려줬다고 회고했다.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에는 조계종 원로의장을 지낸 도원스님을 비롯해 녹원스님과 함께한 수행자 15명, 김종빈 전 검찰총장과 부인 황인선 씨 등 스님의 길을 따르는 수행자 13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들은 녹원스님을 "진정한 리더" "불교정신에 가장 충실했던 수행자" "아버지 같았던 스승님" "언제나 공(公)을 위했고 사(私)가 없었던 어른" 등으로 기억했다.

한편 녹원스님은 1928년 출생해 12세인 1940년 경북 김천시 직지사로 입산 출가해 다음 해 탄옹 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30세인 1958년 직지사의 초대 주지로 임명돼 7차례 연임했으며 1984∼1986년 제24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다. 1968년 8월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로 선임돼 25년간 이사직을 수행했다. 1985년 1월 이사장 직무대행이 됐고 16년간 네 차례에 걸쳐 이사장직을 맡았다. 2017년 12월 23일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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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허당 녹원스님./제공=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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