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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석 칼럼] 국회 예산심의, 두 가지 제언

[옥동석 칼럼] 국회 예산심의, 두 가지 제언

기사승인 2023. 12. 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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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석 인천대학교 교수
전 세계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의회의 예산권한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우리 헌법 역시 이러한 정신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제54조는 행정부에 예산편성권을, 국회에 심의·확정권을 구분하여 부여하였다. 그리고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 이 조항들의 취지가 많이 퇴색하고 있다. 재정민주주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국회가 이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다음 두 가지 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입법과목과 행정과목의 구분

첫째, 예산항목을 입법과목과 행정과목으로 구분하는 원칙을 보다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 예산항목들은 장(분야), 관(부문), 항(프로그램), 세항(단위사업), 세부사업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국회의 예산심의 권한에 포함되는 입법과목과 행정부의 재량에 맡겨지는 행정과목으로 구분된다. 예산항목의 이러한 구분은 전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예컨대 세부사업인 '춘천-화천 국도건설'은 장(교통 및 물류), 관(도로), 항(국도건설), 세항(일반국도건설)의 체계 내에 포함된다. 장, 관은 기능별 분류를 나타내기에 전략적 재원배분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항은 정부정책의 전략적 단위로서 단위사업과 세부사업들의 피라미드 체계에서 정점을 형성한다. 각각의 세부사업은 정치적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입법과목과 행정과목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나눠먹기식 예산분배가 횡행할 것이다.

1951년 제정된 이래로 우리의 국가재정법은 장, 관, 항을 입법과목으로, 그 이하의 세항, 세부사업 및 비목들을 행정과목으로 간주하고 있다. 장, 관, 항 상호 간의 금액 조정은 예산의 이용(移用)으로서 반드시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입법과목이 된다(제47조). 반면 세항 또는 비목의 금액 조정은 예산의 전용(轉用)으로서 국회의 의결 없이 행정부의 재량으로 가능하기에 행정과목이 된다(제46조). 이처럼 예산항목들은 예산 금액을 편성, 승인, 집행, 사후검사 하는 기본 단위이지만 예산권한의 기관별 배분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 국회는 단위사업과 세부사업에 대한 예산금액을 의무화하는 입법을(예컨대 양곡관리법,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 등), 그리고 세부사업에 대한 행정부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입법을(예컨대 달빛고속철도 등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남발하고 있다. 이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 재원배분이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는 것이다. 의회의 세부사업에 대한 관심은 예산편성이 아니라 국정감사에서 행정부의 집행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산안 수정과 동의의 절차 명문화

둘째, 국회의 예산안 수정 제안과 행정부의 동의 절차를 단계별로 명문화해야 한다. 이는 국회의 예산심의에서 공식적인 검증 없이 반영되는 선심성 끼워넣기 증액예산, 즉 '쪽지예산'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대부분의 증액 예산은 특정 지역이나 수혜자를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쪽지예산은 경쟁적 절차 또는 전문적 판단에 기초하여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행정부의 헌법적 책임을 우회하려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매년 1400여 개에 달하는 세부사업과 그 하위의 내역사업들을 수정하고 있다. 헌법 제57조에서 국회가 수정하는 '각항'의 금액은 입법과목인 항(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그 하위의 사업들을 일일이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전략적 목표에 집중하고 행정부는 국회가 정한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는 사업들을 재량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는 특정한 정치적 이익을 반영하는 세부사업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출예산 증액과 감액에 대한 국회의 요구내용, 그리고 이들에 대한 행정부 동의 여부 등을 명문화된 절차를 통해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의 의사결정이 언론을 통해 자세히 공개될 때 국민적 여론을 통한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방식은 국회에서 행정부의 동의가 구두로 이루어지고 본회의 의결과 함께 예산이 확정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국민적 감시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더구나 헌법 제57조는 예산의 증액을 행정부의 일방적 권한으로, 예산의 감액은 국회의 일방적 권한으로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소야대의 국회에서는 이들 일방적 권한들이 서로 충돌하여 국정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국회는 대통령의 역점사업을 일방적으로 삭감하겠다고 위협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예산의 증액을 요구할 것이다. 정치적 이익을 놓고 벌어지는 정쟁은 정치의 본질이지만, 이들을 평가하며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1948년 제헌헌법 이래로 지속되어 온 현행 헌법 제54조와 제57조의 가치를 우리는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조항들은 19세기부터 이어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여러 나라들의 재정민주주의 경험들을 압축하고 있다. 이 두 조항의 취지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예산수정은 항(프로그램) 단위의 금액에 한정하고 그 수정에 대해서는 국민적 감시가 가능한 명문화된 절차가 있어야 한다. 물론 국회는 세부사업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이들은 부대의견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만약 행정부가 이들을 거부하고자 한다면 그 이유를 문서로 분명하게 남겨 이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옥동석 인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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