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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칼럼] 격차와 격차 해소

[김영용 칼럼] 격차와 격차 해소

기사승인 2024. 01. 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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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 3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교통, 안전, 문화, 치안, 건강,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고 없애는 데 힘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또 격차 해소는 정치가 할 일이고, 정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비교하고 차이를 느끼는 것은 불가피하다. 차이의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는 말이 격차라고 한다면, 한 위원장의 '불합리한' 격차 해소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이 글에서는 격차의 원인과 불합리한 격차를 식별해 보고, 그런 격차를 과연 정치가 해소할 수 있는지, 이를 위한 정책의 결과는 어떠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부분 격차는 소득 격차에서 연유하므로 이 글에서는 이에 국한한다.

우선 격차의 원인을 살펴보자. 누구나 동의하리라고 여겨지는 것은,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 신체적 조건과 지적 능력,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법 등에 있어 서로 다르므로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과 역할도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우수한 운동 기량을 가질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탁월한 사업 소질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소질에 따라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여 생산한 산출물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 즉 사람들은 서로 다르므로 각자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분업을 통해 평화로운 협동에 참여함으로써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번영을 누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는 보상인 소득에도 차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사람들 간의 차이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소득 차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은 흔히 격차를 불평등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표현은 적절하다. 즉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은 분명히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 상태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는 평등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은 법 앞에 다시 평등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소득 격차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므로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남의 생명을 위협하고 재산을 파괴하는 전쟁이나 물리력을 이용한 약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약탈 행위는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협동 체제를 무너뜨리고 생존 확률을 낮춘다는 사실을 오랜 기간에 걸쳐 인류가 경험하면서, 약탈 행위를 금지하는 도덕과 법 등의 정의로운 행위 준칙이 생겨난다. 따라서 행위 준칙을 지키면서 얻은 소득에 격차가 생기더라도, 이는 정의나 부정의의 판별 대상이 될 수 없다. 즉 불합리한 격차란 바로 행위 준칙을 어김으로써 생기는 격차를 의미하게 된다. 물론 이런 격차는 준칙을 엄정하게 집행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고, 또 그래야 정의로운 사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불합리한 격차는, 국가와 같은 강제력을 가진 존재가 뒷받침하지 않는 한, 특정 민간인이나 집단에 의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다듬어지고 발전하는 정의로운 행위 준칙에 의해 제거되기 때문이다. 즉 시장은 장기적으로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물론 정의로운 행위 준칙에 의해 해소되기에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리는 불합리한 격차는 정부가 개입하여 좀 더 빨리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정부가 이를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격차는 정부가 쳐놓은 울타리가 원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격차는 시장 경쟁을 촉진하여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간섭 없는 시장 경쟁은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추격하고 추월함으로써 격차를 줄이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연스러운' 격차나 '복잡한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격차의 해소를 위해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질서는 왜곡되거나 파괴되고 격차가 해소되기는커녕 사람들의 삶 자체가 망가진다. 시장 질서란, 개인의 생명을 포함한 재산의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형성된 도덕과 법이라는 정의로운 행위 준칙과, 많은 사람이 행위 준칙을 따름으로써 정착되는 사회 제도 등이 잘 맞춰져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질서를 말한다. 그리고 그런 시장질서는 불확실한 현실에서 서로의 행동을 조화시키는 기대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평화로운 인간 세상을 이룩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격차 해소는 정치가 해야 할 일이고 또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다시 정리하는 것이 좋다. 시장 질서를 파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을 살아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질서(더 광범위하게는 사회 질서)를 보호하는 것이다. 국방과 치안 등이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되는 이유다.

한편 정부가 자연스러운 격차를 방치할 수 없는 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다. 세상에는 노동력이 없거나 부족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정부가 도와야 할 대상이다. '가난'을 강조하는 뜻은 복지의 대상은 나이, 성별, 계층, 직업 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가 누구이든 '가난'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작 복지 수혜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고 복지 재정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 정책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주정(民主政)에서 복지를 둘러싸고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정당 간의 경쟁은 극심한 포퓰리즘을 부추겨 나라 전체를 거의 초토화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이 대표적 사례다. 격차 해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행하는 복지 정책은 자칫하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치 영역은 작을수록 좋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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