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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의사 활용을 통한 경쟁적 의료제도 구축이 의료개혁의 핵심이다

[기고] 한의사 활용을 통한 경쟁적 의료제도 구축이 의료개혁의 핵심이다

기사승인 2024. 04. 2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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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수석부회장님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 정유옹
2015년 정부는 노인 인플루엔자 무료 예방접종 사업을 시작하면서 의사들에게 수가 1만2천원을 책정했다. 한 명의 노인환자가 예방접종을 양방의료기관에서 접종하면 정부가 해당 의료기관에 1만2천원을 준다는 의미다.

당시 의사들은 이 1만2천원이라는 돈이 너무 적다며 수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노인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을 보이콧하겠다고 정부와 국민을 협박한 바 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오직 양의사만 예방접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보면, 예방접종을 제외한 나머지 감염병의 예방과 관리에 관한 사항은 한의사도 함께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심지어 양방의료기관에서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이 의심되는 환자가 한의원에 오면 이를 신고하도록 의무화까지 됐음에도 오직 예방접종만 한의사는 하지 못 한 채 양의사만 할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대한민국에 예방접종을 처음 도입한 지석영 선생은 대한한의사협회의 전신인 전조선의생회의 회장까지 역임한 한의사임에도, 국내에 처음 예방접종을 도입하여 시행한 한의사들은 현재 예방접종을 할 수 없고 100여년이 지난 현재 오직 양의사만 예방접종을 할 수 있다.

만약 한의사까지 예방접종을 할 수 있었다면 과연 의사들이 수가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노인인플루엔자 접종사업을 보이콧할 수 있었을까? 최근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함께 의사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잘못된 양방중심의료체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지는 요즈음이다.

이 대한민국 양방중심의료체계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시절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며 가장 박해를 받은 것 중 하나가 한의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예방접종을 도입한 한의사 지석영 선생(의생면허 6번)을 포함하여 전국의 모든 한의사가 의생으로 격하되어 의사 신분을 잃었고, 일제는 한의학을 천대하며 자신들이 서양에서 먼저 받아들인 양의학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했다.

미군정을 거치면서도 양방중심의료체계는 일제의 잔재로 남아 유지됐고 한국전쟁 도중 겨우 한의사제도가 부활했으나 이름만 살아났을 뿐, 엄밀히 말하면 양방과 동등한 제도적 부활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양방중심의 의료독점체계가 결국 지금과 같은 파국을 만들어냈다.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만으로는 언제고 다시 이러한 혼란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인원이 늘었다고 한들 그들이 일제강점기 이래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기형적 독점권한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감히 의사들이 국민과 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독점적 권한을 남용해 협박하는 일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한의사를 포함해 치과의사, 간호사, 약사 등이 의료제도 안에서 보다 확실하게 의사와의 대등한 경쟁과 협력관계를 만들어내야만 가능하다.

지역 일차의료 강화를 위해 한의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의사가 활용가능한 각종 진단기기와 체외진단키트를 의료보장체제 안에 편입시켜 의사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의사들의 진단기기 남용으로 인한 과잉진료를 막을 수 있다.

지방의 의료공백을 메꾸는 첨병인 공중보건의사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해마다 줄어드는 양방공중보건의사만으로는 더 이상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방의 읍면단위 의료수요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양의사, 한의사를 따지지 말고 최소한 공중보건의사에 한해서는 한의공중보건의사에게도 일정 교육을 수료케 한 후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지역일차의료를 맡기는 것이 시급하다.

이미 좋은 참고모델이 될 비슷한 제도 역시 시행중이다. 보건지소조차 존재하지 않는 벽지에는 보건진료소라는 것이 존재하여 간호사, 조산사 출신의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이 26주간의 교육을 통해 혈압약, 당뇨약을 포함하여 89품목의 양방전문의약품을 처방하며 의료소외지역의 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6년의 학부생기간동안 간호사보다 훨씬 많은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을 공부하고 실습을 거친 한의공중보건의를 활용한다면 보건진료전담공무원보다 더 짧은 교육기간을 거쳐서 훌륭한 의료소외지역의 일차의료공중보건의사를 양성해낼 수 있다.

이미 준비돼 있는 한의사의 공공의료, 지역일차의료에서의 활용은 부족한 공공의료자원을 단기간에 확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점권한을 이용해 국민과 정부를 겁박하는 의사들의 훌륭한 경쟁자이자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정부가 양의사눈치를 보는 나라, 국민이 감히 양의사들에게 대들 수 없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기형적인 양방중심의료체계 안에서도 오직 국민의 곁에 남아 꿋꿋하게 버틴 한의사가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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