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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제주 어멍(어머니) 맛! 자리돔 허쿠과(하겠습니까)…지금이 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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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완 기자

승인 : 2025. 05. 18. 11:30

서귀포 보목항은 제주 사람들의 자리돔 '성지'
5~6월에 최고의 맛, 제주된장만이 물회 맛 빛내
물횟감은 보목리, 구이는 모슬포 자리가 최고
고향 떠난 사람들, 자리돔 왔다하면 무조건 달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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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귀포시 보목리항 포구에서 자리돔을 사려고 기다리는 손님들과 손님들이 부탁한 자리돔 횟감을 손질하는 동네 아주머니들. 여기 손님은 대부분이 제주 현지인들이다./부두완 기자
어멍(어머니) 맛이 그리울 때, 할망(할머니) 맛이 생각날 때, 제주의 아지방(아저씨)들은 된장을 가장 먼저 떠 올린다. 된장과 어우러지는 놈삐(무)나 노물(배추 등)은 흔한 재료이지만, 자리물회의 재료인 자리돔은 봄과 초여름 사이가 한철이다. 제주의 전통을 잇는 맛은 어멍 맛이다. 뭍으로 떠난 제주인들에게는 더 그리운 단어이다.

기자도 어린 시절 어멍(어머니)이 12월에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봄철에 된장을 담글 때, 찹쌀을 갈아 고추장을 담글 때, 아직도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나는 된장보다는 달달한 삶은 콩 한 줌 얻어먹는 맛에 어머니 곁을 지켰다. 어머니는 메주를 만들며 "메주가 잘 터(띄워야)야 된장이 구수하다. 그래야 자리물회, 각재기 물회, 오이 냉국 등이 제대로 맛을 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머니의 부지런했던 손놀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서울 올라간 아들 집에 오실 때 된장과 자리돔을 싸 들고 와서 만들어주시던 어멍의 맛! 자리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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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아주머니들이 보목리항 포구에서 자리돔을 횟감으로 다듬고 있다. 아주머니들 뒤로 보이는 섬이 섶섬이다./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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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보목리 섶섬 앞바다 바다속에서 자리돔이 때로 몰려다니고 있다. 보목항에서 스킨스쿠버를 하는 와이키키 다이버스 팀에게 수중 촬영을 부탁했다. .
서귀포시 보목리 앞바다에서 잡은 자리돔을 물회 재료로 썼을 때, 그리고 된장이 어우러져야 자리물회가 가장 맛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보목리의 자리물회 집과 제주의 맛집은 전통 그대로 된장을 풀어 맛을 낸다.

지난 13일 아침 자리돔을 즉석에서 판매하는 보목항 포구에 나갔다. 그런데 유명 빵집이나 음식점에만 있는 줄 알았던 오픈런이 있었다. 항구 주변 주차장과 주변 도로 곳곳에도 자동차가 가득했다. 관광용 렌트카가 적고 대부분 제주도 차량번호 판이었다.

섶섬 앞바다에서 소형 모터보트가 사람들이 몰려있는 포구쪽으로 윙 하며 달려왔다. 그리고 자리를 담은 바구니(일명 컨테이너)를 바로 판매자에게 인계하고, 곧바로 또 윙 거리며 섶섬을 향해 달려갔다. 자리가 담겨있는 컨테이너 플라스틱 상자에는 이불 하나가 덮여 있었다.

운반해 온 자리돔을 포구에 내려놓자마자, 판매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5kg, 3kg 외치더니 금세 동이 났다. 그런데 다음 손님이 5kg 부르고나서, 뒤에 있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민(그러면) 3kg만 줍써(주세요)" 다음 손님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보았다. 자리돔 맛을 나누었다고 할까. 2kg을 얻는 손님은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옆에서 자리를 가위와 칼로 자리돔 횟감을 다듬어 주는 동네 어멍에게 자리돔을 건넸다.

자리돔을 사면 바로 옆자리로 이동해 할복(횟감으로 다듬는 일)을 맡긴다. 당시 자리 가격은 kg당 1만 2000원, 다듬는 값는 kg에 3000원이었다. 이날 자리돔 횟감 1kg에 가격은 1만 5000원인 샘이다. 둘이서 충분히 먹는다. 그것도 바로 잡아 올린 자연산 돔을, 지난 주는 좀 많이 잡혀서 kg당 8000원 까지 내려갔다 한 아지망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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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는 바로 잡은 자리돔을 포구에 내려놓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 자리돔은 이불로 씌워 놓았다. 아래 사진은 어선이 잡은 자리돔을 가지러 다시 항구를 떠나고 있다./부두완 기자
보목리 어촌계에 왜 자리를 한 컨테이너씩만 운반 해오느냐 물어봤다. 어촌계는 "자리돔 신선도와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빨리 전달하기 위해 보통 20분 간격으로 운반선이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자리돔 선도와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였다.

자리돔은 철갑 같은 외피로 덮여 있어 하루 정도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보목리 어촌계 한철권 계장에게 보목리 자리가 왜 횟감으로 유명한지 물어봤다. 한 계장은 "보목리 앞바다 앞에 있는 섶섬 주변은 파도가 잔잔해, 자리돔의 움직임이 적다. 그래서 뼈가 부드럽고, 생선이 기름지다. 모슬포 부근은 물살이 세고 생선들의 움직임이 강렬해 크고 뼈가 쌔다. 대신 구잇감과 조림용으로는 최고"라고 설명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제주바다 동쪽인 성산과 구좌쪽은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고 한다. 특히 종달 쪽에 일명 말여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온난화로 인하여 자리돔이 동해까지 올라가 제주인의 입맛이 사라지고 있다고 어촌계는 전했다.

보목항에서 개인택시를 허 모씨는 만났다. 그는 구좌에서 보목리항 까지 50km를 넘게 달려왔다고 한다. 30년째 자리돔 철만되면 , 보목항으로 자리돔을 사러 자주 온다고 했다. 알고 보니 고향은 구좌인데 오래 전 서귀포에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맛을 못 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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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목리어촌계 식당으로 들어가서 주문한 자리물회. 기호에 따라 마른 제피잎과 식용 빙초산을 적당히 넣어 먹는다. 곁가지 반찬으로 나온 고등어구이와 자리젓, 풋고추 등은 자리물회 맛을 더한다./부두완 기자
이러한 어멍 맛의 행진곡은 자리돔 축제다. 해마다 5월 하순부터, 6월 초 자리돔 철에 열린다. 항구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자리돔 축제 준비로 바빴다. 보목리와서 자리돔물회 한 그릇 안하면, 자리돔 맛 모독죄에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간판이 '보목리어촌계집'인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하고 10분쯤 지나자 낯이 익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바로 제주경찰청장으로 퇴직한 고기철 전 치안감이었다. 기자도 아는 후배 2명과 같이 왔다. 합석해 자리물회 이야기로 오랜만에 서귀포 소식을 들었다. 동석한 후배가 자리물회를 잘 설명한 시비가 있다고 했다.

이야기 중 나온 자리물회는 여지없이 된장으로 풀어낸 물회다. 거기엔 오이와 깻잎, 풋고추, 식초, 새우리(부추) 등, 그리고 기호에 따라 말린제피잎, 그리고 식용 빙초산이 맛을 돋운다. 첫 수저부터 배지근한 자리돔의 지방과 된장이 어울려 낸 어망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그리고 빠르게 한 수저를 더 먹고 나서야, 아! 살이지키여(그리웠던 고향의 맛을 표현), 오랜만에 고향의 맛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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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물회 이야기를 담은 한기팔 님의 자리물회 시비. 시비는 보목리항 포구 방파제 입구에 있다./부두완 기자
점심을 먹고나서 항 주변에 시비를 찾아봤다. 시비는 한기팔 시인이 쓴 '자리물회' 첫 구절부터 자리물회 먹고 싶다였다. 그 못나고도 촌스러운 음식, 정겨운 고향 말로, 자리물회나 허레 갑주… 아지망! 자리물회나 줍써 이렇게 시작되는 제주 사람들의 자리돔 사랑과 얽히고설킨 제주 사람들의 향수가 가득 배어난 시였다.

서울로 올라간 친구들에게 자리물회 사진은 고문이다. 하나같이 가지고 올라오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래서 서울에서 제주도민회나 읍면 단위 행사에서 자리물회 준비는 필수다. 그리고 제주에서 자리돔, 물 횟감 갖고 올라간다고 하면 웬만한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모여들 정도로 자리돔 사랑은 무한하다. 특히 캄보디아로 사업 이민 간 김모 대표는 제주에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돔 회와 물회, 자리젓으로 세끼를 다 채운다. 제주 사람은 이를 고향의 맛이라 한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어멍 맛이라고 한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콩과 제주 해수로 담가낸 된장의 맛이 자리물회 맛을 더 하기 때문이다.

자리돔 철에는 자리가 살이 쪄 온몸에 지방이 가득하다. 거기서 배어 나오는 배지근한 맛과 된장은 제주 어부와 농부가 만들어 낸, 제주의 삶이 담긴 맛이다. 그래서 육지 올라간 제주인들의 자리물회 이야기는 향수이기도 하다.

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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