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에 최고의 맛, 제주된장만이 물회 맛 빛내
물횟감은 보목리, 구이는 모슬포 자리가 최고
고향 떠난 사람들, 자리돔 왔다하면 무조건 달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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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도 어린 시절 어멍(어머니)이 12월에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봄철에 된장을 담글 때, 찹쌀을 갈아 고추장을 담글 때, 아직도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나는 된장보다는 달달한 삶은 콩 한 줌 얻어먹는 맛에 어머니 곁을 지켰다. 어머니는 메주를 만들며 "메주가 잘 터(띄워야)야 된장이 구수하다. 그래야 자리물회, 각재기 물회, 오이 냉국 등이 제대로 맛을 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머니의 부지런했던 손놀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서울 올라간 아들 집에 오실 때 된장과 자리돔을 싸 들고 와서 만들어주시던 어멍의 맛! 자리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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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아침 자리돔을 즉석에서 판매하는 보목항 포구에 나갔다. 그런데 유명 빵집이나 음식점에만 있는 줄 알았던 오픈런이 있었다. 항구 주변 주차장과 주변 도로 곳곳에도 자동차가 가득했다. 관광용 렌트카가 적고 대부분 제주도 차량번호 판이었다.
섶섬 앞바다에서 소형 모터보트가 사람들이 몰려있는 포구쪽으로 윙 하며 달려왔다. 그리고 자리를 담은 바구니(일명 컨테이너)를 바로 판매자에게 인계하고, 곧바로 또 윙 거리며 섶섬을 향해 달려갔다. 자리가 담겨있는 컨테이너 플라스틱 상자에는 이불 하나가 덮여 있었다.
운반해 온 자리돔을 포구에 내려놓자마자, 판매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5kg, 3kg 외치더니 금세 동이 났다. 그런데 다음 손님이 5kg 부르고나서, 뒤에 있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민(그러면) 3kg만 줍써(주세요)" 다음 손님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보았다. 자리돔 맛을 나누었다고 할까. 2kg을 얻는 손님은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옆에서 자리를 가위와 칼로 자리돔 횟감을 다듬어 주는 동네 어멍에게 자리돔을 건넸다.
자리돔을 사면 바로 옆자리로 이동해 할복(횟감으로 다듬는 일)을 맡긴다. 당시 자리 가격은 kg당 1만 2000원, 다듬는 값는 kg에 3000원이었다. 이날 자리돔 횟감 1kg에 가격은 1만 5000원인 샘이다. 둘이서 충분히 먹는다. 그것도 바로 잡아 올린 자연산 돔을, 지난 주는 좀 많이 잡혀서 kg당 8000원 까지 내려갔다 한 아지망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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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돔은 철갑 같은 외피로 덮여 있어 하루 정도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보목리 어촌계 한철권 계장에게 보목리 자리가 왜 횟감으로 유명한지 물어봤다. 한 계장은 "보목리 앞바다 앞에 있는 섶섬 주변은 파도가 잔잔해, 자리돔의 움직임이 적다. 그래서 뼈가 부드럽고, 생선이 기름지다. 모슬포 부근은 물살이 세고 생선들의 움직임이 강렬해 크고 뼈가 쌔다. 대신 구잇감과 조림용으로는 최고"라고 설명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제주바다 동쪽인 성산과 구좌쪽은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고 한다. 특히 종달 쪽에 일명 말여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온난화로 인하여 자리돔이 동해까지 올라가 제주인의 입맛이 사라지고 있다고 어촌계는 전했다.
보목항에서 개인택시를 허 모씨는 만났다. 그는 구좌에서 보목리항 까지 50km를 넘게 달려왔다고 한다. 30년째 자리돔 철만되면 , 보목항으로 자리돔을 사러 자주 온다고 했다. 알고 보니 고향은 구좌인데 오래 전 서귀포에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맛을 못 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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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 나온 자리물회는 여지없이 된장으로 풀어낸 물회다. 거기엔 오이와 깻잎, 풋고추, 식초, 새우리(부추) 등, 그리고 기호에 따라 말린제피잎, 그리고 식용 빙초산이 맛을 돋운다. 첫 수저부터 배지근한 자리돔의 지방과 된장이 어울려 낸 어망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그리고 빠르게 한 수저를 더 먹고 나서야, 아! 살이지키여(그리웠던 고향의 맛을 표현), 오랜만에 고향의 맛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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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간 친구들에게 자리물회 사진은 고문이다. 하나같이 가지고 올라오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래서 서울에서 제주도민회나 읍면 단위 행사에서 자리물회 준비는 필수다. 그리고 제주에서 자리돔, 물 횟감 갖고 올라간다고 하면 웬만한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모여들 정도로 자리돔 사랑은 무한하다. 특히 캄보디아로 사업 이민 간 김모 대표는 제주에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돔 회와 물회, 자리젓으로 세끼를 다 채운다. 제주 사람은 이를 고향의 맛이라 한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어멍 맛이라고 한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콩과 제주 해수로 담가낸 된장의 맛이 자리물회 맛을 더 하기 때문이다.
자리돔 철에는 자리가 살이 쪄 온몸에 지방이 가득하다. 거기서 배어 나오는 배지근한 맛과 된장은 제주 어부와 농부가 만들어 낸, 제주의 삶이 담긴 맛이다. 그래서 육지 올라간 제주인들의 자리물회 이야기는 향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