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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사이트] ‘떠나는 구단들, 놓치는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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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5. 26. 09:04

닛폰햄과 어슬레틱스가 보여준 경고
‘NC 다이노스가 지역에 기여하지 않았다’는 말이 틀린 이유
에스콘 2
기타히로시마에 자리한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닛폰햄은 삿포로시와의 갈등 끝에 연고지를 이전하며 이 신구장을 새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상업·문화 공간과 연계된 이 복합구장은 '스포츠 도시 재생'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웹사이트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어떤 구단도 영원히 한 도시의 팀일 수는 없다."

2025년 봄, 창원 NC파크에서 발생한 관중 사망 사고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불균형과 불신이 폭발한 순간이었다. 팬들의 분노는 이제 구단을 넘어 도시를 향하고 있다. '스포츠 도시'가 구단과 팬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도시가 스포츠를 잃게 되는지를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한국에서 창원과 NC 다이노스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일본과 미국에서 선행 사례가 존재한다. 닛폰햄 파이터스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두 구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떠났고, 남겨진 도시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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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콘 필드 홋카이도'의 내부 전경. 2023년 개장한 닛폰햄 파이터스의 새 홈구장은 구단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첨단 복합 시설로, 기존의 삿포로돔과는 다른 구단 중심의 운영 모델을 제시했다. /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웹사이트
◇ 삿포로가 닛폰햄을 떠나보내기까지

일본 닛폰햄 파이터스는 본래 도쿄를 연고지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지방 분산을 장려하던 일본야구기구의 흐름과 맞물려 홋카이도 삿포로로 연고지를 옮겼다. 삿포로시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NPB 12개 구단 중 하나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4만 석 규모의 삿포로돔이 있었다. 닛폰햄은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했고, 저팬시리즈 우승과 오타니 쇼헤이 같은 슈퍼스타도 배출했다.

그러나 2015년 시장 교체 이후, 구단과 시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삿포로시는 관중 수에 따라 임대료를 조정하고, 광고 및 굿즈 판매 수익의 상당 부분을 시가 가져가는 구조를 유지했으며, 구장 내 점포 운영에도 제한을 두었다. 여기에 보수 비용까지 구단과 절반씩 부담하라는 조건이 추가되면서, 구단과 시의 갈등은 깊어졌다.

닛폰햄은 협상을 거듭했지만, 시는 "시민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구단이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닛폰햄은 인근 도시 기타히로시마와 손을 잡고, 2023년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를 개장하며 연고지를 완전히 옮겼다. 구단은 수익을 직접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했고, 기타히로시마는 '스포츠 기반 도시 재생'의 롤모델로 떠올랐다. 반면, 삿포로돔은 프로구단을 잃고 사실상 주인을 잃은 상태로 남아 있다.

◇ NC 다이노스, 반복되는 그림자

2025년, NC 다이노스는 창원 NC파크에서 발생한 낙하물 사고로 관중이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그러나 진짜 분기점은 그 이후였다. 창원시는 시설 점검과 재개장 시점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고, 안전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구단은 홈경기를 울산으로 옮겼고, 팬들 사이에선 "구단이 떠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사실, NC와 창원의 균열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안전 관리 외에도, 상업시설 운영과 수익 배분 문제에서 시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했다는 이야기는 구단 안팎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닛폰햄이 삿포로와의 불균형 계약에 피로감을 느꼈듯, NC 역시 창원이라는 도시 안에서 운영적 한계에 봉착해 있었던 셈이다. 구단이 먼저 등을 돌린 것처럼 보이지만, 도시가 먼저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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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신구장의 내부 조감도. 객석 뒤로 카지노 호텔가가 펼쳐지는 개방형 구조는 도시의 정체성과 야구의 현장감을 동시에 담아낸다. 어슬레틱스는 이곳에서 2028 시즌부터 새로운 시대를 연다. / 어슬렉티스 SNS
◇ 오클랜드가 잃은 것, 라스베이거스가 얻은 것

비슷한 사례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벌어졌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수년간 신구장 협상을 벌였지만 매번 무산됐다. 리그 최저 예산팀, 최저 관중 수, 낡은 오클랜드 콜리세움-모든 조건이 구단을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게 만들었다. 2023년, MLB는 어슬레틱스의 라스베이거스 이전을 승인했고, 2028년부터 정식으로 연고지를 옮기게 된다.

이는 오클랜드에겐 치명타였다. NFL의 레이더스, NBA의 워리어스에 이어 MLB마저 떠난 도시. 이제 오클랜드는 '4대 리그 구단이 없는 미국의 대도시'가 됐다. 관중, 구단, 브랜드, 도시 경제… 스포츠가 떠난 자리는 겹겹이 텅 비게 된다.

반면 라스베이거스는 준비된 도시였다. 공공 예산 투입, 민간 파트너십, 세금 감면, 토지 제공 등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NFL, NHL, WNBA에 이어 MLB까지 품에 안았다. 스포츠를 '도시 전략'으로 인식한 결과였다. 어슬레틱스는 떠났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제안과 기다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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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개장을 앞둔 라스베이거스 어슬레틱스의 신구장 조감도. 오클랜드를 떠나는 MLB 어슬레틱스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인근에 새로운 홈구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돔 형태의 혁신적 외관은 도시의 관광·문화 인프라와 결합해 '스포츠 중심지'로의 변신을 상징한다. / 어슬렉티스 SNS
◇ 이제 NC가 선택할 차례다

만약 NC가 '연고 이전'까지를 염두에 둔다면, 선택지는 많다. 전국 곳곳에 있다. 같은 영남권의 울산시는 예산 16억 원을 긴급 투입해 라커룸 등 야구장 시설을 프로 수준으로 정비하고 NC의 홈경기를 유치했다. 수도권에는 성남시가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지난 3월 25일 "종합운동장을 야구장으로 리모델링하겠다"며 KBO와 MOU를 체결했다.

일부 극소수 창원시의원은 'NC가 지역사회에 공헌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프로스포츠단을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막대한 기여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는 "경쟁은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발견 절차"라고 말했다. 프로스포츠단 운영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기업이 지자체의 불합리한 관행에 끌려다닐 이유는 없다.

이참에 NC가 창원시를 포함한 전국 각 지자체를 상대로 '프로야구단 유치 경쟁'을 시작해도 좋다. 프로스포츠의 가치를 알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된 지방자치단체라면 앞다투어 유치 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NC는 그 가운데 스포츠 발전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골라, 새로운 비즈니스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포츠를 품지 못한 도시에 남는 것

도시가 구단을 품지 못할 때, 단지 경기장이 텅 비는 것만은 아니다. 일상의 리듬, 지역 경제, 시민의 자부심까지 함께 사라진다. 스포츠는 문화이자 경제이며, 도시의 얼굴이다. 구단은 머무를 수도, 떠날 수도 있다. 그것은 도시가 아니라 구단이 결정한다. NC 다이노스는 아직 창원에 있지만, 그 발걸음은 이미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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