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의 아이템에는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엔씨소프트의 상징이 된 집행검부터 PC방 필수 구비템 변신반지, 부자 유저들의 전유물이었던 투명 망토, 노가다의 상징이었던 엔트의 열매까지. 리니지의 28년 역사는 곧 아이템의 역사다.
원하는 아이템의 가격표는 달랐어도 아이템 하나를 바라보며 투자했던 열정과 집념의 무게는 같다. 수많은 유저들의 노력과 시간이 담겨있는 아이템을 탐구하며 리니지의 역사를 돌아봤다.
◆ 리니지의 아이콘 집행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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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 역사를 관통하는 전설의 아이템 집행검. /리니지 클래식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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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황의 집행검(이하 집행검)'은 리니지를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이다. 2007년 11월 출시 당시에는 '나이트발드의 검'이나 '싸울아비 장검' 같은 한손검이 유행했다. 집행검은 공격 속도가 느리고 방패도 착용하지 못한다는 단점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양손 무기 리뉴얼과 함께 초월적인 성능을 보유하게 되며 시세가 고공행진했다. 0강 집행검의 가격이 현금 3천만 원을 넘나들 정도였다. 당시 모든 게임을 통틀어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
집행검의 가격이 높았던 이유는 압도적으로 높은 제작 난이도 때문이었다.
최대 난관은 '라스타바드 무기 제작 비법서'였다. 라스타바드 던전 보스를 잡아야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봉인된 역사서 8장을 각각 모아 봉인을 풀어야 했는데 이 때도 실패 확률이 존재했다. 실패하면 역사서와 재료가 증발했다. 심지어 성을 차지한 강한 유저들이 모인 혈맹 '성혈'이 던전을 통제해 일반 유저들은 재료 모으기조차도 그림의 떡이었다.
게다가 0강 상태에서도 강화에 실패하면 무기가 증발할 수 있어 위험부담도 컸다. 2009년에는 전 서버를 통틀어 +1 집행검이 단 하나만 존재했을 정도로 진귀했다.
워낙 유명한 아이템이다 보니 관련 사건도 많았다. 2011년에는 리니지 스트리머 인범이 '매스 텔레포트(여러 명의 캐릭터를 한꺼번에 텔레포트 시키는 마법)'를 활용한 PK(Player Kill)로 백룡사랑이라는 유저의 집행검을 증발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3년에는 한 60대 유저가 집행검을 강화하다 소멸시킨 뒤 엔씨소프트에 집행검을 복구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실수로 집행검을 강화했다는 것이 유저의 주장이었지만 재판부는 집행검 소멸 전후로도 다양한 강화를 시도한 정황으로 보아 착오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10년 넘게 리니지 최강템으로 군림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었던 집행검은 2020년 10월 +10 집행검을 재료로 하는 신화 무기 '그랑카인의 심판'이 등장하고 아이템 공급도 늘어나며 최강템의 자리를 내줬다.
그래도 여전히 집행검은 리니지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남아있다. 2020년 KBO 한국시리즈에서 NC 다이노스가 우승을 차지한 뒤 주장 양의지가 실물 집행검을 들어올리는 세레모니를 펼치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사장님, 여기 변반 있죠?"...PC방의 급을 나눈 '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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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반지 보유 PC방에는 유저들이 물밀듯이 몰렸다.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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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PC방은 최신 게임을 매끄럽게 돌릴 수 있는 고품질 사양이나 맛있는 음식, 서비스 등을 주요 강점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과거 리니지 시절 PC방이 내세웠던 홍보 포인트는 '변신 조종 반지(이하 변반)'였다.
리니지 초창기에는 변신주문서가 없어 단풍나무막대를 사용해 랜덤으로 변신해야했다. 그러다보면 이속이나 공속이 느리거나, 칼도 착용할 수 없는 '꽝' 변신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변반을 착용한 채 단풍나무막대를 사용하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했다. 위협적인 선공몹으로부터 안전해진다는 장점은 기본이고 해골이나 오크 전사 등으로 변신하면 공격속도가 빨라지는 장점이 있어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PC방은 변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주요 강점으로 내세웠다. 유저들은 변반이 있는 PC방을 찾아 1시간 넘게 이동하며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당시 변반의 변신 시간이 2시간이라 PC방 유저들이 2시간마다 반지를 돌려가며 변신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PC방 알바가 수백만 원의 가치를 가진 변반을 들고 소리소문없이 잠적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PC방에 변반을 낀 유저가 등장하면 모니터 뒤로 수많은 구경꾼이 몰릴 정도로 가치가 높은 부의 상징이었다.
◆ 보이지 않는 공격이 가장 무서운 법...부자의 상징 '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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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상징이자 PK 필수템 투망.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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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망토(이하 투망)는 착용하면 캐릭터가 투명한 상태가 되는 아이템이다. 변반, 이반과 함께 부자 유저를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이다. 데스나이트를 비롯한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낮은 확률로 등장했기 때문에 일반 유저들은 손에 넣기 어려웠다.
투망을 착용하면 선공 몬스터 일부가 착용자를 인식하지 못해 비선공으로 바뀌는 기본 효과도 쏠쏠했지만 핵심은 PK였다.
초창기에는 투망을 착용한 상태로 공격할 수 있어 PK에서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다. 투망 PK에 질린 뉴비들이 게임을 떠나자 개발진은 투망 착용 상태에서 공격을 금지하고 착용 해제 후에도 3초간 공격이 불가능하게 패치했다. 그러나 유저들은 어떻게든 투망 활용법을 찾아냈다.
바로 주변의 숨어있는 적을 찾아내는 '디텍션' 마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투망을 입고 숨어있는 상태에서 다른 유저가 디텍션을 사용하면 3초 페널티 없이 바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이 매커니즘을 활용해 파티원 전원이 투망을 착용한 상태에서 디텍션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스킬 연계로 적을 죽이는 전술도 나왔다. 이러한 방식의 PK를 '텍피'라고 불렀다. 투망 때문에 리니지의 전투 전략이 한 차원 발전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먹자에서도 투망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일반적인 먹자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당하는 유저들은 대응하기 어려웠다. 희귀한 아이템을 바닥에 떨구도록 유도한 뒤 투망을 입은 다른 일행이 아이템을 가져가는 조직적인 사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투망은 개발진이 그어놓은 한계선을 기발한 발상으로 넘어서려 했던 유저들의 열망과 집념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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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의 보금자리였던 요정의 숲. /리니지 클래식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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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의 줄기, 엔트의 열매. 보기에는 평범한 재료 아이템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요정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어 감동을 준다.
2000년 1월 리니지에 요정 클래스를 위한 터전 '요정의 숲'이 생겼다. 이 요정의 숲은 요정외에 다른 클래스가 숲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엔트와 아라크네, 판, 페어리 등의 가디언들은 다른 클래스를 보면 가차없는 공격을 날리며 숲의 평화를 지켰다.
가디언들은 요정들을 지켜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인을 맨손으로 공격하는 유저에게 특별한 선물까지 줬다. 엔트와 판, 페어리 등 가디언을 맨손으로 타격하면 다양한 재료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지만, 부주의하게 무기를 들고 공격했을때는 강력한 반격에 목숨을 잃었다.
판과 페어리는 제작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드랍하면서 많은 요정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특히 엔트가 주는 아이템들이 인기가 많았는데, 엔트의 줄기는 '비취물약(해독제)'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취물약에 비해 무게가 나가지 않고 가격도 낮아서다.
엔트의 열매는 '맑은물약(말갱이)'의 효과와 더불어 요정의 2차 가속 아이템인 엘븐 와퍼를 상점에서 판매하지 않았을 때까지 재료로 사용되면서 가치가 높았다.
무료 3일 계정으로 하루종일 다양한 아이템을 수집하며 초기 자본을 마련하는 유저도 많았다. 채집한 아이템을 팔기 위해 글루딘 마을로 향하는 저레벨 요정 유저를 노리는 PK단도 있을 정도였다.
◆ 어두운 리니지를 밝혀주는 양초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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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가 없는 리니지는 너무 어두웠다.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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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 유저들의 가장 큰 적은 어둠이었다. 밤이 되거나 던전에 들어서면 시야가 급격히 줄어들어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개미굴 같은 곳에서는 바닥에 양초나 등잔을 켜둔 상태로 군데군데 떨어뜨리고 사냥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극초창기에는 마을에도 불빛이 없어 밤이면 유저들이 비추는 불빛에 의존해야 했다.
가장 기본적인 광원 아이템은 양초다.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들에게는 초보자의 상징인 단검과 가죽재킷, 양초 2개가 주어졌다. 요정은 어두울 때 화면이 적외선 영상처럼 초록색으로 변하는 대신 시야가 좁아지지 않는 인프라비전 능력이 있어 양초가 주어지지 않았다.
양초는 광원 기능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양초는 기본 지급 아이템 중 유일하게 상점에 개당 1원으로 팔 수 있었다.
이를 노린 유저들은 캐릭터를 생성하고 삭제하며 양초를 모으는 노가다를 반복했다. 몇몇 유저들은 상점에서 판매하는 일본도를 사기 위해 양초 2만 개를 모으는 집념을 보여줬다. 이처럼 양초는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 '생명의 검' 고귀한 헌신에 대한 엔씨소프트의 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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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버에 오직 하나뿐인 아이템 생명의 검.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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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한 고귀한 정신을 기념하는 특별한 아이템이 있다.
2001년 8월 31일 인천에서 리니지를 즐기던 한 유저가 사고를 당해 긴급 수혈이 필요했다. 문제는 유저가 희귀 혈액형인 RH-O형 보유자였다는 것이다.
이 사연의 소문이 퍼지자 리니지 유저들과 엔씨소프트가 합심해 전 서버에 공지를 돌리며 혈액형이 일치하는 유저를 찾았다. 그리고 조우 서버에서 혈액형이 일치하는 유저가 등장해 수혈을 자원하며 소중한 목숨을 구했다.
엔씨소프트는 헌혈을 자원했던 유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리니지 1년 무료 이용권과 '생명의 검'이라는 아이템을 선물했다.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일본도보다 옵션이 좋고 9강이 보장되는 강력한 무기였다. 성능보다도 의미가 있는 것은 전 서버에 단 한 자루만 존재하는 아이템이라는 점이었다.
이후 더 좋은 옵션의 무기들이 등장하며 존재가 잊혀져가던 생명의 검은 2015년 빈티지 프로젝트라는 리뉴얼 업데이트를 통해 '생명의 단검'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집행검 이상의 옵션을 가진 무기가 된 생명의 단검은 이후로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