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경시 우려 넘는 시스템 마련 시급
"의료비 절감분을 호스피스에 투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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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말기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지난해 320만명을 넘어섰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며 '좋은 죽음(웰다잉)'에 대한 생각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8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20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월별 통계에 따르면 작년 12월말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국민은 320만1958명에 이른다. 남성은 107만9173명, 여성은 212만2785명이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이 74.1%에 달한다. 직전해인 2024년 12월 기준으로는 270만1997명이었는데, 1년새 50만명 가까이, 65세 인구 4명 중 1명 정도에 이를 정도로 늘고 있다.
◇고령층 4명 중 1명 서약…"부모 돌봄 경험 작용"
성정현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간 연명 상태였던 부모를 돌본 경험이 있는 세대가 삶의 질과 '고통 없이 죽을 권리'에 대해 뚜렷한 관점을 갖게 된 것"이라며 "대중매체 영향 등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해외 각국의 사례를 보면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일관된 기준은 없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차이, 종교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가운데 미국, 영국, 일본, 대만 등에서 관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성 교수는 "미국의 경우 꽤 일찍이 연명의료제도에 대한 기준을 정했고 환자의 자기결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며 "영국도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중시하면서 정신적 판단이 가능한지 여부와 위임의 절차 등을 상세히 정하고 있고, 그 외 일본이나 대만 등이 관련 제도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생명 보호에 대한 인식과 기준이 점차 완화되고 경사로를 내려가듯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이른바 '미끄러운 비탈길' 현상에 대한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연명치료 중단은 생명경시, 안락사나 존엄사 이슈 심화, 대리결정권의 인정 범위 문제 등 부정적 측면도 있을 것"이라며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 전달, 자기결정권 관련 홍보 강화, 법적 제도와 절차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 도출, 노년기 다양한 사회교육 강화, 무엇보다 정부의 의료보장 강화를 통해 고통없이 노년을 향유할 수 있는 예방적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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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한 자기결정권이 존중될 수 있는 인프라가 도입되지 못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족과의 충분한 소통이 부재한 채 요양원이나 복지관에서 의향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호스피스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다. 강원남 행복한죽음웰다잉연구소장은 "미국 등 해외는 자기결정권 존중 이후 호스피스나 완화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만, 한국은 연명의료 중단 결정 후 갈 곳이 없어 요양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 입장에서도 수익성이 낮은 호스피스 병동 설치를 꺼리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강 소장은 "현재 국내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전국에 약 100여 곳에 불과해 대기 기간만 한두 달이 소요된다"며 "의향서 작성이 늘고 있고, 가정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이들도 많다면 정부가 통합돌봄에 나선 가운데 가정 호스피스 등 선택권을 다양화하는 등 그와 비례해 시설도 늘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과의 충분한 소통과 대화"라며 "어르신들이 의향서를 작성하기 전 가족과 어떤 방식으로 작별을 하고 싶은지 얘기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마련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특히 "연명의료를 중단했을 경우 의료비가 줄어드는 만큼 호스피스에 국가가 투자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