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권력 잃은 미 군사력 한계 드러나
동맹체제의 파편화, 미국에 뼈 아파
아시아에 연쇄 파장… 중국 공세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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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쪽은 미국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파장에 놀라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려 한다. 이란은 시간이 자신의 편임을 알고 있다. 전쟁을 오래 끌수록 호르무즈 해협을 움켜지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이란의 레버리지(지렛대)는 커진다.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까지 결정할 수 있다. '생존'만 하면 승리라는 걸 이란 정권은 안다. 전쟁의 주도권은 이란이 쥐고 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개전 초부터 이란의 '승리'를 예측한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현실주의(realism) 국제정치론을 대표하는 석학이다. 이란 핵 농축 무력화, 미사일 전력 폐기, 후티 반군 등 역내 대리세력 지원 근절 등의 목표를 공습을 통해 이루겠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계획을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이들 목표를 이루려면 '두 단계의 정권교체'가 성사돼야 한다. 우선 정권교체를 통해 신정주의자 중심의 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다음으로, 새로 들어선 정권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시와 의도에 순응하는 세력이어야 한다. 이 지난한 고차방정식을 공군력만으로 풀 수 있다는 발상자체가 몽상이다. 미어샤이머는 개전 직후부터 전쟁은 미국이 시작했지만, 종전 시기와 그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이란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진 베트남전쟁과 같은 경로를 밟을 것이라고 했다. 모두 맞아떨어지고 있다. 미어샤이머 교수에게 이번 전쟁은 이룰 수 없는 목표, 부적합한 수단, 출구전략 부재가 결합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다.
미국의 이란전 곤경이 세계질서에 미칠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약점과 한계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압도적인 군사력만으로 전략적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점, 미사일, 드론, 기뢰 등 비대칭 무기의 효능이 입증됐다. 미군의 인명 피해가 커지는 군사 개입, 장기 군사작전은 극심한 미국 내 정치 양극화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도 파악됐다. 러시아, 중국, 북한에 고무적인 소식이다.
하드파워(군사력)의 한계보다 심각한 문제는 바닥난 미국의 소프트파워(연성권력)다. 미국의 이란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다. 미 정부의 누구도 대 이란 공습이 합법적 자위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란의) 임박한 공격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전후 80년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지탱해 온 동맹체제의 형해화도 극적으로 드러났다. 이란 전쟁이 격화되며 유가가 치솟자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을 호위하는 군함을 보내줄 것을 동맹국들에 요청했다. 이에 응한 동맹은 한 곳도 없었다. 몇몇 동맹국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위해 미국이 전쟁 중인 이란과 독자적인 '거래'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미국의 등을 찌르는 행위다. 그동안 동맹체제를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먹는 '사기 행위'라고 공격해 온 게 트럼프다. 자업자득이다. 동맹 없이 적대세력과 홀로 싸울 수밖에 없는 미국은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다. 미 동맹체제의 위기를 논하며 칼라 노렐 토론토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의 헤게모니(패권)가 우리 눈앞에서 붕괴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이란전 곤경은 아시아에 연쇄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미국은 '레드라인'을 넘은 이란의 상시 위협에 노출된 중동에 더욱 발이 묶인다.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에 넘겨주면 미국은 종이호랑이일 뿐이다. 중국 견제에 최우선 순위를 둔 미 국가안보전략은 또 한번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 전쟁에 차출돼 비어가는 미 아시아·태평양 주둔군의 무기고를 채우는 데만 수년이 걸린다.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의 약점에 고무된 중국은 더욱 공세적으로 나온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에 대한 중국식 국제질서 강요와 회유는 더 거세지고 집요해질 것이다. 핵무기 보유에 더 기고만장해질 북한의 위협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한층 위험해진 세계에서 미국의 아시아 전력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아시아 국가들의 발등의 불이 됐다.
배병우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