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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훈의 여의도투데이] 험난했던 ‘투표 원정기’

[윤희훈의 여의도투데이] 험난했던 ‘투표 원정기’

기사승인 2012. 12. 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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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하러 서울에서 목포까지 14시간, 1000km를 달리다.
#Intro
2012년 12월 18일, 밤 10시30분 서울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18대 대통령선거일 D-0’을 목전에 두고 여기에 온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간의 박빙승부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국민들의 투표 열정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인도에서 재외국민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2000㎞를 이동했다는 인도 교민 김효원씨. 축구선수 차두리씨는 재외국민 투표를 위해 뒤셀도르프에서 본까지 아우토반을 달렸다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기자는 ‘작은 실수’로 인해 투표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목포까지 1000km 달렸다.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prologue.
지난 3월 이사를 한 기자는 그 후, 전입신고를 한 줄 알고 부재자투표 신청도 그냥 지나쳤다. 

투표를 며칠 앞두고 투표소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확인해보니 ‘전남 목포시 유달동 제2투표소’ 가 나왔다.

‘아’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몇 번의 고민을 하다, 페이스북에 일단 말을 뱉었다. 

‘투표하러 목포에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들의 지지 댓글과 ‘좋아요’. 이제 억지로라도 갈 수 밖에 없게 됐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내려가기 위해 구매한 버스표. 목포 직행 버스표가 매진돼 광주를 거쳐 목포를 갈 수 밖에 없었다./사진=윤희훈 기자

#1.
매표소로 갔다. “목포행이요”. 매표소 직원이 답했다. “12시 막차까지 매진이에요”.

빈자리가 나올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발예정인 버스 앞에 가서 기다렸다. 헛된 기대감이었다.

짧은 시간 수차례 고민 끝에 ‘광주행 11:45’ 버스를 예매했다. 심야에 일반 버스. 정말 최악의 조건이다.

#2.
매표소 앞에서 기자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 

“투표를 하러 전주에 내려가요. 제가 외국에 살다가 와서 이번이 처음으로 투표를 하는 건데, 장거리 이동이 부담됐지만 제 권리를 포기할 순 없었어요” - 이진아(28, 서울 상도동)

이씨는 “일 때문에 서울에 오전 열시까지 돌아와야한다”면서 “그럼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투표를 하러 간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꼭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 주변에 저 같은 경우가 3~4명 있다”고 덧붙였다.

부재자 투표에 대해 묻자 이 씨는 “외국에 살다와서 부재자 투표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며 “선관위의 홍보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려고 하니 신청기간도 지났다”고 지적했다.

#3. 
11:45. 버스에 올랐다. 빈자리 없이 꽉 찬 일반버스. 히터까지 세게 틀어 너무 더웠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광주에 도착했다. 새벽 3시.

광주에서 목포까지 가는 첫 버스는 5시 20분에 있었다. 광주 고속 버스터미널에서 2시간동안 뻗치기. 대기실 의자에서 졸다 깨다를 거듭하다 보니 버스 시간이 다 됐다. 

버스에 앉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50분을 달리니 목포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6시 10분.

집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었다. 

기자가 투표한 목포 유달동 제2투표소.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 투표과정은 2분도 채안돼 끝이났다./사진=윤희훈 기자
#4. 
아침 8시 집에서 자고 있던 형을 깨워 투표소로 같이 갔다. 

투표소에는 4~5명이 줄을 서있었다. 큰 동네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진 않았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투표용지를 받았다. 기표소, 그리고 투표함. 2분만에 투표가 끝났다. 

투표의 감격보다는 몸의 피곤함이 몰려왔다. 9시 50분 용산행 KTX를 스마트폰으로 예매했다. 오후 1시 23분 용산역 도착예정.

힘들었던 ‘투표 원정기’의 끝이 보였다. 내일은 전입신고를 하러 가야겠다.

#epilogue

KTX에서 올라오는 길에 뉴스를 확인해보니 투표열기가 만만치 않다. 투표율 80%를 넘어선 15대 대선과 유사한 수준의 투표율 행진이 계속됐다.

이 같은 이례적인 모습은 투표가 ‘정치 활동’이 아닌 ‘문화’로 자리잡았기에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이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연예인들과 일반인들의 투표인증샷이 넘쳐난다. 각자의 투표 과정을 소개한 글도 많이 게시됐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서울역에서 한 부부를 만났다고 전했다. 대구에서 올라왔다고 소개한 이 부부는 오늘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투표를 하고 가기 위해 항공료를 100만원 더 지불했다고 한다.

한국 정치의 밝은 미래를 전망하게 하는 이야기다. 

투표를 가리켜 ‘피를 흘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유권자 혁명’이라고 한다.

이 유권자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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