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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100세 시대]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도 당당한 대한민국 사회구성원”

[희망 100세 시대]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도 당당한 대한민국 사회구성원”

기사승인 2013. 01. 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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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활동 상담전문가 꿈꾸는 중국인 가정주부 왕그나씨
“수원YWCA, 아주대 평생학습 무료교육이 큰 도움”

수원시 다문화가정 행사에서 왕그나씨(좌)가 이자스민 의원(우)과 사진을 찍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이정필 기자 = “급속도로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구성원들도 다가오는 100세 시대 대한민국의 가족입니다.”

15일 수원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왕그나(33·여)중국 단둥에서 태어난 그녀는 선양에서 무역을 하던 고모의 소개로 14살 연상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02년 경기 의왕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둔 왕씨는 경기 수원으로 이사해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2009년 수원YWCA의 부부교육에 참여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아주대학교 평생교육원의 다문화활동 상담전문가 과정, 여행가이드 교육 등을 받으며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왕씨는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한 대학과 지역자치단체 등의 무료교육 프로그램이 만족스럽다”면서도 한국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살아가는 고충과 우리사회에 아쉬운 부분을 털어놨다.

“남편과 2001년 만났을 때 서로 첫눈에 반해 서류를 만들고 다음해 한국에 왔어요. 큰딸이 11살, 아들이 10살로 한살터울인데 학예회 때 자녀에게 ‘창피하니까 중국말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너무 속상했어요. 유치원부터 같이 다닌 아이들은 ‘너희 엄마 중국인이잖아’라고 놀리기도 했고요. 이제 한국도 엄연한 다문화가정 사회인데 이런 편견이 하루 속히 없어지길 바랍니다.”

한국의 고질적인 외국인 차별 문화에 충격을 받은 왕씨는 주눅 들기보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을 선택했다. 선생님이나 친구 등 주변사람에게 엄마를 소개할 때 당당히 중국 사람이라고 밝혀둬 나중에 상처받지 말라고 가르치고, 중국어를 구사하면 장래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해줬다.

왕씨는 집에서 자녀들에게 일부러 중국말을 많이 쓴다. 덕분에 큰 딸의 중국어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고, 작은 아들도 웬만한 회화는 다 알아듣는다. 한국어 교육은 같이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도 하고, 영어에 중국어도 하면 얼마나 경쟁력이 생기는지 알려주니까 ‘엄마, 그럼 나 나중에 통역사할까?’라고 해요. 방학이니까 아들 학교에도 한번 가서 아이들의 편견을 없애주고 싶어요. 현재 이주여성이나 그 자녀들을 위해 YWCA나 대학 등 단체들이 해주는 무료교육은 좋은 편입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한국말이 서툴다보니 문화 차이에 대한 적응도 힘들었던 왕씨는 중국인 친구의 소개로 2009년부터 수원YWCA와 아주대 평생교육원에서 다문화가정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으며 한국을 알아갔다.

교육프로그램 과정을 수료하며 한국어와 한국 생활에 점점 재미가 붙은 왕씨는 동사무소나 지역 센터 모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 이주여성이 느끼는 필요사항을 활발히 건의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져 결혼 초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전문가가 되기 위해 컴퓨터와 관광가이드 학원에도 다닌다.

2010년 고용노동부 복지카드로 두피관리 자격증도 딴 왕씨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고 능력도 있는데 아직까지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사회 진출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국어 발음이 어눌하다고 기피하거나 아예 외국인은 안 쓴다는 회사도 봤습니다. 사정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일만 시키고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곳도 많고요. 아이들 교육비를 벌려고 한 만두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고된 일에 비해 시급이 너무 적어 500원만 올려달라고 요구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아 허리만 다치고 퇴사했지요.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이주여성이 비슷한 경우의 부당한 일을 겪어봤을 겁니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 지쳐가던 왕씨는 다문화가정 관련 행사에서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과 국내 1호 ‘다문화 정치인’인 몽골 출신의 이라 경기도의원을 만나면서 꿈을 다졌다. 그녀들처럼 이주여성이 사회 각 분야에 활발히 진출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한국을 꿈꾸는 왕씨는 가정일과 아이들 교육에 쉴 틈이 없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원하는 일을 하려면 끊임없이 교육받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늘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신청하면서 다문화가정 지원정책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왕씨는 정부에 대한 건의사항도 잊지 않았다.

“다문화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건 남편이나 시댁식구와의 불화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결혼소개소에서 거짓으로 제시한 조건에 속아 시집 온 사람들은 행복한 저를 부러워하죠. 나라에서 이런 부분은 확실히 보장해줘야 합니다. 또 이주여성의 친정식구가 자유롭게 한국을 왕래하고 체류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한국여성들은 결혼하면 분가해서 사는데 이주여성은 가족도 마음대로 못 봅니다. 이렇게 다문화가정이 많아지는데 그만 차별하고 더불어 살아가야죠.”

시어머니를 모시고 중국 고향으로 가 부모님을 뵙는 게 소원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왕씨는 누구보다 심성 고운 대한민국 여성이었다.

중국 고향에 있는 왕씨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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