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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유머펀치] 불효유감(不孝遺憾)

[아투 유머펀치] 불효유감(不孝遺憾)

기사승인 2021. 11. 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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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논설위원
아투유머펀치
타고난 건강 체질로 젊은 시절에는 힘깨나 쓰고 다녔던 영감님이 있었다. 게다가 사업을 해서 돈깨나 벌더니 중장년기에는 바람을 피우다 못해 숫제 딴살림을 차리고 본처와 자식은 나몰라라 했다. 늘그막에야 본가로 돌아왔지만 그나마 가족들이 박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 남편이고 내 아버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또 민폐가 생겼다. 영감님이 고질병으로 병석에 누우면서 간병 기간이 여러 해가 된 것이다.

가족들이 지쳐가던 어느 해 영감님이 사경을 헤매자 담당 의사가 임종이 가까웠으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남편에 대한 미운 정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객지에 나가살던 자식들도 급히 달려왔다. 그런데 영감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저승과 이승 문턱 넘나들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자 할머니는 고생이 많은 자식들 보기조차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렸다. 영감님이 누운 채 눈을 감은 침상을 끌고 영안실로 향하는데 맙소사 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이는 게 아닌가. 보다 못한 할머니가 나섰다. 영감님의 손가락을 쓸어잡고 밑으로 꾹 눌러넣으면서 말했다. “이제 그만 의사 말 들으소~.”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가 더 이상 돌보지 않고 숨지게 한 20대 청년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른바 ‘간병살인’이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 것은 그만한 이유가 또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가출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번 돈으로 아버지 병원비를 내고 나면 쌀 살 돈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 불효자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오래전에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70대의 병든 노인이 90대 노모를 살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간병살인’은 ‘간병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난과 소외가 부른 우리 사회의 짙은 그늘이다. ‘간병살인’은 이제 개인의 책임과 고통을 넘어선 사회와 국가의 비극이다. 궁핍한 살림에 시들병에 걸리고 빨리 죽지 못하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다. 보편적 복지니 뭐니 하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푼돈이나 뿌리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에게 이제 국민이 ‘의사 말 좀 들어라’고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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