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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마음에 먼저 오는 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마음에 먼저 오는 봄

기사승인 2022. 02. 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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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2월은 양력으로는 늦겨울이다. 2월 초는 대한(大寒)의 말후(末候)로 사실 혹한에 속하는 때다. 그러나 그 뒤에는 온도가 상당히 빠르게 상승하여 날씨기 풀리기 시작한다. 24절기에서 봄의 길목으로 치는 입춘이 2월 4일에 있다. 이 시점에서부터 태양은 동지와 춘분의 한 중간점에서 춘분 쪽으로 가까워져 간다. 천체의 운행은 봄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입춘은 동지로부터 45일이 지난 시점으로 한낮의 양지에서는 상당히 따뜻한 햇볕을 쪼일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달력상으로는 2월은 엄연한 겨울이고 그 동안 축적되어온 한기로 인해 실제로 상당히 춥다. 설 또는 음력 신년은 흔히 2월 초순, 즉 입춘 무렵에 오는데 이때의 추위를 세한(歲寒)이라고도 부를 정도로 상당히 매섭다.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는 우리 속담도 이때의 추위가 상당함을 나타낸다. 겨울이 서서히 그 끝에 이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시베리아 기단 또는 동장군의 위세가 만만치 않은 때다. 이때의 추위를 얕보고 옷을 가벼이 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입춘이 되었다고 이제 추위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럼에도 이월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우리 마음속에서는 봄을 맞고 있다. 기다리는 것은 빨리 맞고 싶은 법이다. 하물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추위를 벗어나게 해 줄 봄이라면 오죽하겠는가. 추위에 약한 생명체에게 겨울은 시련의 계절이고 따라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월이 되기가 무섭게 우리는 봄을 예견하고 마음으로는 이미 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봄은 감각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맞는다. 아니, 봄은 감각으로 느끼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이미 와 있다.

우리가 어떤 계절을 맞으면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경우는 겨울이다. 그래서 겨울을 맞으면서부터 우리는 겨울이 빨리 끝나고 봄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영국 시인 셀리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라고 노래했다. 겨울은 절망적인 추위 속에서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계절인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도 있다. 입춘일 대문에 써 붙이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되니 크게 길하고, 볕이 드니 경사가 많으리라)”라는 입춘방은 어서 봄을 맞고픈 욕구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성촉절(聖燭節·Candlemas)인 2월 2일을 그라운드호그 날(Groundhog Day)로도 부르는데 이날 많은 도시에서 그라운드호그로 봄을 예측하는 행사가 열린다. 도시의 원로나 시장이 그라운드호그 한 마리를 굴에서 꺼내 단상에 올려놓고 그것이 자기 그림자를 보는지 여부로 남은 겨울 날씨를 예측한다. 자기 그림자를 보면 남은 겨울이 더 오래 가고, 보지 않으면 봄이 일찍 온다고 예측하는 것이다. 이 또한 미신이지만 봄을 빨리 맞고 싶은 마음의 발로로서 일종의 봄맞이 행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신으로라도 춥고 긴 겨울을 빨리 끝내고 따뜻한 봄을 어서 맞고픈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태양의 운행에는 착오가 없다. 태양은 동지점인 남회귀선까지 내려갔다가 반드시 다시 올라와 춘분점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머잖아 춘분점에 오게 된다. 봄이 오는 것이다. 나무조차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겨울 동안 나목은 추위 속에서 봄이 오면 피워낼 잎눈과 꽃눈을 분화시키며 키운다. 봄을 기다리며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도 겨울이 오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의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태양이 반드시 동지에서 춘분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즉 겨울 뒤엔 어김없이 봄이 온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겨울이 오면, 특히 늦겨울이 되면, 따뜻한 봄도 멀지 않다는 사실은 어린애도 아는 상식이다. 그것이 감각으로는 추운 겨울 속에서도 마음으로는 따뜻한 봄을 맞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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