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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현 칼럼] 천조국 미국과 또 다른 천조국 한국, 그리고 안보

[장광현 칼럼] 천조국 미국과 또 다른 천조국 한국, 그리고 안보

기사승인 2023. 06.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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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현 아시아투데이 부사장
흔히 미국을 천조국(千兆國)이라 부른다. 미국의 한 해 국방예산이 우리나라 돈으로 1,000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 미국의 국방예산은 947조원이며, 미 의회에 제안한 내년도(2024) 국방예산은 무려 1,111조원이다. 예산 규모 면에서 볼 때 세계 2위인 중국으로부터 10위 한국까지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이처럼 막대한 국방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는 패권국의 위치를 확고히 유지하면서 자국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서이다. 반면 한국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천조국 대열에 진입했다. 2022년도 기준으로 나라의 빚이 1,067조 7,000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 680조 5,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집권 5년 만에 1,000조원을 돌파했다. 갓 출산한 아기마저도 태어나면서부터 2,068만원의 빚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지난 수년간 계속된 포퓰리즘은 안보 분야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이 연일 핵과 미사일로 위협을 가하는데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인위적인 평화에 매달리다 보니 불과 몇 년 사이에 안보의 근간이 크게 무너졌다. 특히 국민적 공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9.19 남북군사합의문' 채택은 북한군이 자행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최고수준으로 강화된 우리 군의 태세와 능력을 일거에 무능화시키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군사합의문 이행을 내세워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주공이 투입했던 문산 축선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내에 철옹성처럼 견고히 구축된 감시경계초소(GP)들을 일제히 허물어뜨렸다. 또한 군사분계선(MDL)을 따라 10㎞ 폭의 '완충지대'를 설정하면서 유일한 대북 우위 전력인 확성기 방송시설을 모두 철거했다. 그리고 MDL 상공의 일정 공역(서부 20㎞·동부 40㎞)을 '비행금지구역'으로, 북방한계선(NLL) 상의 일정 해역(서해 135㎞·동해 80㎞)을 '완충수역'으로 각각 설정하면서 접적 지·해·공역 일대에 대한 우리의 감시정찰자산 운용을 전면 중단하고, 최북단 서북도서에서 포병사격 훈련도 금지했다. 정치적 셈법에 따른 남북군사합의문 하나로 우리 군의 대북 감시 및 경계 태세는 물론, 유사시 최소한의 대응능력까지 묶어버린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위장평화 쇼에 눌려 주적 개념을 상실한 군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한동안 제대로 된 대응태세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작년 말에 있었던 북한 무인기 도발이다. 당시 북한 무인기 한 대가 서부전선을 통해 수도권까지 유린하고 유유히 북쪽으로 복귀할 동안 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년 동안 무인기 도발에 대비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배정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 참사는 이 외에도 차고 넘친다. 주요 축선을 책임지던 수 개의 전후방 사단과 군단이 이미 해체됐거나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미 간 정례적으로 해오던 대규모 연합연습은 턱없이 축소 시행되었고, 실(實)병력 기동훈련과 대구경화기 사격 횟수 또한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관학교에서는 슬그머니 전쟁사 과목이 사라졌고,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홀대받는 대신 검증 안 된 자들을 독립유공자로 둔갑시켜 영웅으로 환대함으로써 장병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에 혼돈을 유발했다. 특히 국가 안위보다는 표심을 노린 파격적인 병사 의무복무 기간 단축과 봉급 인상은 초급 간부들의 지원율과 근무 의욕을 크게 떨어뜨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작용했다. 

북한이 연일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며 군사적 도발로 멈추지 않는 와중에도 북한에 대한 '퍼주기'는 계속됐다.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남한의 대북 지원은 현금과 현물을 포함하여 8조 6,0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대북 투자 금액까지를 합하면 13조원에 달한다. 돈으로 평화를 구걸하는 동안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일삼으며 핵 능력을 고도화, 정밀화, 소형화하는 것에 집중했다. 병행하여 ICBM과 SLBM, SRBM 등 핵 투발이 가능한 다양한 중장거리 미사일들을 개발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급기야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즈음에 윤석열 정부가 국방·외교·안보 분야에도 '비정상의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 4월 말 북한 핵 위협에 맞서 '워싱턴 선언'과 '핵 협의그룹(NCG: Nuclear Consultative Group)' 신설에 합의함으로써 나토식 핵공유에 버금가는 수준의 확장억제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성공했다. 또한 한일관계 개선에 이어 한미일 안보 공조도 복원했다. 지난 5월 초에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방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 '제2의 강군'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방 대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북한의 고도화된 핵 위협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급속한 안보 환경 변화와 범세계적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추세에 부합하기 위해 국방 제 분야에 대한 운영시스템 구축과 적기 신기술 도입을 위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등 국방혁신은 매우 시의적절한 과제이다. 

제2의 강군을 지향하는 국방혁신의 첫걸음은 무엇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군이 아무리 과학화된 첨단장비로 무장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주체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군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불행하게도 예나 지금이나 능력과 자질보다는 특정 인맥과 자기 사람을 중용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정치권에 줄을 서고 정권 코드에 맞추느라 소신을 굽히는 간부, 강한 훈련보다는 아기자기한 부대 가꾸기와 부하들 마음 훔치기에 관심을 쏟는 지휘관이 많아졌다. 소신과 전문성이 부족한 소위 '아스팔트 군인'들을 군 수뇌부와 주요 직책에 벼락 중용하는 한 '제2의 강군' 실현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는 야전과 정책분야를 넘나들며 전문성과 싸움꾼 기질을 겸비한 인재들을 발굴하여 국방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를 보완하길 바란다. 

아울러 핵을 가진 북한군의 위협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강군 육성을 위해서는 정치적 셈법에 따라 경쟁적으로 남발된 각종 안보 포퓰리즘을 일소하는데 힘써야 한다. 첫째, '창끝 전투력'인 장병들의 심적 태세를 확립하고, 강한 훈련을 통해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 북한의 실체적 군사 위협에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장병들의 대적관 확립과 필승의식 고취를 위한 정신교육 강화는 필수이다. 아울러 내실있는 한미 연합연습 및 제병과 합동훈련을 통해 상시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둘째, 파격적인 병사 복무기간 단축과 봉급 인상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초급 간부들의 처우 개선과 근무 의욕 고취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표심(票心)만을 의식한 병사 복무기간 단축은 출산인구 저하 추세와 적정병력 규모를 고려하여 심층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핵 고도화와 미사일 개발에 멈추지 않고 군사적 도발을 자행할 경우 남북군사합의문 폐지도 불사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 군의 손발만 묶어 무모한 희생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국민들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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