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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묻지마 폭행’ 솜방망이 처벌…강남 한복판서 여성 7명 구타했는데 집유

반복되는 ‘묻지마 폭행’ 솜방망이 처벌…강남 한복판서 여성 7명 구타했는데 집유

기사승인 2021. 06. 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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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피고인 범죄 인정, 반성하고 있어…양형사유 참작"
전문가 "여성혐오 범죄지만 법원서 인정되는 죄목 폭행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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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한밤 중에 20대 여성들만 골라 ‘묻지마 폭행’을 한 3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잇따른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판결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엄벌주의 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50부(고연금 부장판사)는 상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권모씨(32)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또 120시간의 사회봉사도 내렸다.

권씨는 지난해 8월 오전 0시30분께 강남구 논현역 인근에서 택시를 잡고 있던 여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것을 시작으로, 강남대로를 따라 9호선 신논현역 방면으로 도주하던 길에 마주친 다수의 여성을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권씨의 추가 범행을 조사한 결과, 그는 15분 동안 7명의 여성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7명은 모두 권씨와 모르는 사이였다.

권씨는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했다.

1심은 “피고인은 범죄 전 피해자를 유심히 살피는 등 적당한 대상을 물색했고, 범행 후 빠른 속도로 도주했다”며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하거나 결여돼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피고인이 피해자 7명 중 4명과 합의한 점, 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권씨 측은 “범행 당시 만취해 전혀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등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항소했고, 검찰은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사정을 종합해보면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기억해내지는 못할지언정 범행 당시 정상적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쌍방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최근 여성 대상 ‘묻지마 범죄’가 속출하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면서 원성을 사고 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여성은 전체의 57.0%로 같은 응답을 한 남성(44.5%)보다 12.5%포인트 높았다.

앞서 지난해 1월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앞 횡단보도에서 30대 여성 A씨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욕설하고 침을 뱉은 70대 남성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같은해 9월 ‘직장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일면식 없는 10대 여성을 쫓아가 벽돌로 머리를 내려친 40대 남성은 살인미수 혐의에도 불구하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서혜진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사회나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와 본인의 비뚤어진 욕망을 ‘묻지마 폭행’으로 풀려는 것”이라며 “이런 사건을 사회적으로는 여성혐오가 가미된 폭력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실제 법정에서 적용되는 죄목은 폭행과 상해죄에 그친다”고 말했다.

서 인권이사는 “법원 판결이 국민 법 감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건 맞지만 형량은 신체의 자유와 직결됐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엄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땜질식 처방에 그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분노와 혐오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출소 후에도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수행하며 혐오의 마음을 갖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형사정책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혐오의 굴레를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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