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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재판!] 대법 “지적장애 정도 상관없이 ‘장애인 준강간’ 적용 가능해”

[오늘, 이 재판!] 대법 “지적장애 정도 상관없이 ‘장애인 준강간’ 적용 가능해”

기사승인 2022. 11. 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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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한 지적장애 피해자 성적 자기결정권 있다는 2심 판단 지적
대법 "장애 정도,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판단 절대적 기준 아냐"
원심 무죄 판결은 확정…"피해자 장애 사실 인식 못했을 수 있어"
대법원2
대법원 전경 /박성일 기자
'장애인 준강간죄' 적용을 따질 때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고 사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81)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 B씨(48)를 2019년 2월 한 달 동안 다섯 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B씨는 "우리집에 가서 청소 좀 하자"는 A씨의 말에 이끌려 범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에게 성폭력처벌법 6조 4항의 장애인 준강간을 적용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저지른 성폭행을 처벌하는 규정으로 일반 형법상 강간죄보다 형량이 높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

2심은 1심과 달리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 당시 B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2심 재판부는 정신적인 장애가 '오랫동안 일상·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을 뿐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를 의미한다며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라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의 성적 자기결정권 여부 판단 기준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장애 정도가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가능 판단에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에 '신체적·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음'은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가 주 원인으로 반항이 곤란한 경우를 포함한다"라며 "장애의 정도만이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와 주변 상황·환경, 가해자의 행위 방식, 피해자의 인식·반응 등 사건 당시의 조건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B씨가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능력이 낮은 점, 세 번째 범행을 당한 뒤 인근 식당 주인에게 도움 받아 경찰 신고가 접수 된 뒤에도 A씨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점을 미루어 '정신적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곤란 상태'로 보았다.

다만 대법원은 A씨가 무죄라는 결론은 뒤집지 않았다.

대법원은 "A씨는 이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B씨를 만나면 심부름을 시키고 용돈이나 먹을 것을 주는 등 알고 지냈고, 집을 청소해달라며 데려가 성폭행한 뒤 먹을 것이나 돈을 준 사실을 알 수 있다"며 "B씨의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폭력처벌법상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하급심의 혼란을 해소했다"며 "향후 유사 사건의 판단에 지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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