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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밟기는 답성놀이, 성 돌기 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부녀자들이 성곽 위에 올라가 산성의 능선을 따라 밟으며 열을 지어 도는 풍속으로, 남자는 읍성을 지키고 여자들은 성벽을 튼튼하게 다지면서 무기로 활용한 돌을 머리에 이고 운반하던 데에서 유래된 전통 민속놀이이다.
청도읍성 밟기는 2009년 새마을단체에서 본격적인 청도읍성 복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 맞춰 선조들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재현된 이래, 올해로 6회째로 매년 시행해 오고 있으며, 대구 경북지역의 유일한 읍성 밟기 문화행사이다.
예부터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신앙으로 읍성을 돌면 액운을 쫓고 무병장수하며 극락왕생한다 해 최근 가족단위나 친구, 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관광객들이 읍성을 찾아 답성 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곳 청도읍성은 청도의 진산(鎭山)인 남산(829m)에서 청도천으로 뻗은 두 줄기의 능선 사이에 남고북저, 동고서저 한 해발 100∼122m의 구릉지와 일부 평탄지에 축조된 전형적인 평지성과 산성의 중간형태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헌 기록상으로는 고려초에 토석 혼축성으로 축조되었던 성곽으로 길이 1570보(약 1.9km) 높이 5척 5촌(약 1.65m)의 규모다.
1589년(선조 22)에 학봉 김성일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정세의 위급함을 조정에 알리자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대로변에 접한 주군의 성지를 수축하라는 왕명에 따라 1590년(선조 23)에 군수 이은휘가 2년에 걸쳐 개축하여 완공했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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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1세기 현대에 이르러 청도읍성이 순조롭게 복원되고 있는 현장에서 읍성밟기가 문화행사로 개최되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직접 참가할 수 있게 되면서 문화행사로 호평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 당시 동문은 봉일루, 서문은 무회루, 북문은 공북루라했고,〈경상도읍지〉등 조선시대 문헌에 의하면, 이 성곽 안에는 동헌·객사·근민당·군관청·장관청·기고청·군기고·대동고·고마청·사창·억만고 등의 관아 건물이 있었다.
외세침략과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로서는 객사로 사용되던 도주관과 동헌이 각각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12호 및 문화재자료 제403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현재까지 복원된 사업은 석빙고가 있는 동측구간에서 북측구간으로 북문인 공북루가 완공되고 조선시대 관아건물인 고마청과 억만고가 복원됐고, 읍성 성곽은 600m정도 복원이 완료된 상태로, 현재 서문 무회루 구간의 발굴조사와 함께 올해 서문이 복원될 예정이다.
이승율 청도군수는 “청도읍성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관아건물이 소실되고 읍성마저 많이 훼손되었던 역사현장으로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우리 선조들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며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교육적 체험장으로 활용되도록 청도읍성 복원사업에 더욱 박차를 기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