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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출신인 그는 1940년 14세 나이로 독립투사인 조부 조동식 선생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백두산 기슭에 정착,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후 1945년 12월 인민해방군에 입대, 50여 년에 가까운 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고인은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 지원군 사령부 작전처 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당시 역할은 지원군 사령관인 펑더화이(彭德懷)의 통역이었다. 이때 러시아어 통역이었던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맏아들 마오안잉(毛岸英)과 한 숙소에서 지내면서 친분을 쌓기도 했다. 그의 승승장구는 이때의 인연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과 남다른 인연을 배경으로 조선족으로는 드물게 인민해방군 고위직에 오른 그는 2000년 5월, 2004년 6월 두 차례 중국 국제우호연락회 최고고문의 자격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예방한 바도 있다. 국내에는 친조카를 비롯한 친척 다수가 아직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화통신은 “고 조남기 장군은 중국 공산당의 우수당원으로 산전수전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였다.”면서“무산계급 혁명가이자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였다”고 애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