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구촌에서 중국인을 따라 갈 민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에 ‘부리타(不理他)’, 즉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것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도 거의 매일이다시피디 전국에서 부지기수로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게 이상한 사람의 행동으로 오해를 사는 것은 때문에 중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해야 한다.
MAI
0
마이충팡 씨와 양자, 양녀들./제공=신화통신.
하지만 세상에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는 말처럼 모든 중국인들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남의 어려움을 자신의 것인양 안타까워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드물기는 해도 종종 있다. 광시(廣西)장족자치구 바이써(百色)시 근교 농촌 주민인 마이충팡(麥瓊方·59) 씨가 아마 이에 딱 해당하는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관영 신화(新華)통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배운 것도, 재산도 별로 없는 평범한 촌부에 불과한 그녀가 지난 40여 년 동안 무려 86명의 양자와 양녀를 거둬 하나 같이 훌륭하게 키워낸 것.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같은 기간 무의탁 노인 27명도 정성스럽게 돌보면서 인간답게 생의 마지막을 보내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평생을 봉사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솔직히 궁벽한 농촌에서 양자, 양녀들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먹고 입히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녀들의 90%를 대학에 진학시켰다. 게다가 이들 중 20 명은 최고 명문인 베이징, 칭화(淸華)대학으로 진학했다. 기적을 일궜다는 표현을 써도 좋지 않나 싶다. 일부 성공한 이들은 당연히 양모에게 크게 보답을 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능력이 되면 나처럼 하라. 그게 나를 진정으로 돕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한사코 모든 제의를 거절한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의 보살핌을 받은 무의탁 노인들의 상당수가 숨을 거두기 직전 전 재산을 주겠다는 유언을 하나 같이 마다한 것은 이로 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MAI 1
0
스리 잡을 뛰면서까지 버는 돈으로 봉사의 삶을 보내는 마이충팡 씨./제공=신화통신.
그녀는 지난 2015년 스리 잡을 뛰면서까지 남에게 도움을 내미는 행동을 생활화한 모범적 의인 후보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수상을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은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와 정신이 허락하는 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이로 볼 때 50년 동안 봉사의 삶을 사는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때 쯤이면 아마도 의인상 수상을 흔쾌히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